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한 노숙자의 것으로 보이는 변사체가, 최근 세월호 사고와 관련 깊은 문제많은 교단의 실질적 교주라는 유병언 씨의 것으로 확인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의 평소 해외 각국에서 보였던 큰 씀씀이와 일가의 호사스런 생활 그리고 그 교단에서 보여준 그에 대한 충성도에 비해 시체가 발견된 정황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생전의 영화와 최후의 모습이 너무 대비된다. 혹은, 누군가에 의한 즉 배신자에 의한 타살 의혹도 제기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런 갑작스런 죽음은 마치 6·25 당시 빨치산 활동을 하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최후를 생각케 하는 면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각종 기록이나 회고록 들을 읽어보면 이들 조직 생리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많다. 극도로 고립된 상황 이미 휴전협정이 체결된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극한의 생존조건 속에서 "투쟁"하는 이 사람들에게 보내졌던 결정서 9호 10호 등의 내용은 당과 수령의 방침엔 잘못된 것이 없고 일을 망친 것은 너희들이니 너희들이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유병언 때는 그런 일까지는 없었지만 이현상의 시신이 발견된 뒤 그 사살한 공을 서로 다툰 일까지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현상이 사살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죽어있었던 것이라는 의혹을 준다. 그리고 그 직전에 그는 평당원으로 강등된 상태였다고 한다. 대체로, 북에서 온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그의 수고에 대한 배려를 생각했다면 그의 시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발견되어 수난을 겪지도 않았을 거라고 한다. 의지만 있더라면 사령관 한 사람 쯤은 포위를 뚫고 북으로 갈 수가 있었을 것이란다. 하지만, 북으로 간다 해도 이미 박헌영 등 남로당계가 숙청된 상황에서 그가 설 자리는 이미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