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문학

쉽게 쓰여진 시, 또 다른 고향

Alcibiades 2015. 1. 7. 10:16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윤동주 시집을 보면 채 서른이 안되 생을 마쳤고 생전에 시인으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라 그런지 동시의 비이 많고 감동까지 감소시킬 것은 아니나 깊은 사상으로 지은 시는 아닌 듯하다. 독립운동을 하다 검거되었다고는 하나 산문으로 자기 주장을 나타낸 바도 없고 조선이나 조선인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는 없는데 그래도 그 글들이 알려져 국민시인으로 까지 사랑받게 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