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雪中梅)
"설중매(雪中梅)"하면 조선왕조500년 시리즈 중 1984년에 방영된 드라마 제목으로 알려졌다. 한명회 역을 맡은 정진이 유명해진 드라마다. 본래는 북송(北宋)의 시인인 정해(鄭獬)의 시이다. 구한말 신소설로도 알려져 있는데 <설중매>는 번안소설이라 다른 작품들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일본의 스에히로 데스초오(末廣鐵腸)의 계몽적 소설을 한국실정에 맞게 번안한 소설이라 한다. 비록 문체는 고루하지만, 일종의 계몽소설로 신시대의 대세에 맞는 개혁과 혁신에 대한 열망은 현대한국의 어떤 작품들 못지 않은 현장감과 현실감을 고스란히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세계와 천하정세를 논하는 주인공들의 식견은 그 자체로 당대의 개화사상과 논설의 고스란한 반영한다. 하지만, 이미 안목은 높고 내외의 정세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비해, 이미 대세는 기울고 조선은 이미 국권을 사실상 상실하고 망국을 눈앞에 둔 1908년이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다. 주인공은 서구를 본받아 국가를 개혁을 도모하는 대정치인을 지망하지만 뜻하지 않은 모함을 받아 수감되었다 풀려나면서 골치아픈 연애문제에 깊이 빠져버린다. 개혁이 요원해 보이는 정치에서 그 문제가 연애와 결혼으로 옮겨간다.
정치적 모략의 수단으로는 다소 상투적인 문서위조와 밀고 등이 동원된다. 여기서 나오는 다이너마이트는 동양에서 혁명당의 상징처럼 되었던 것인데 한국에서는 좀 낯설다. 젊은 날에 열렬한 혁명당이었다던 왕정위가 그랬고 또 군벌 염석산은 이것을 준비해 들어와 놓고는 사용하기를 단념했다고 한다. 돌아보면 경제동물이라는 일본을 비롯하여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뒷걸음친다는 한국과 사회주의의 중국 (비록 공산혁명은 한 셈이나) 모두 완전히 서구화하는데는 성공치 못한 셈이다. 혁명을 상징하는 다이너마이트가 부정적으로 모략수단으로 나타난 것은 동양사회의 타고난 보수성을 서구화의 성급한 이상이 쉽게 극복치 못할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 듯 싶다. 다소 전통적이나 신여성이 될 조짐이 있는 여성과의 결혼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고 먼 내일을 기약하자는 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인 듯 싶다.
그 외에 썩어빠진 기자들과 그에 영합 모략을 획책하는 정치인 등이 등장한다. 소설이 담고 있는 시대인식과 세태비평에 대해서는 주인공이 사소한 문제인 "연희장(演戱場)"에 대한 개혁에 대한 발언에서 볼 수 있는데 식민지와 근대화 기를 이미 거친 100년 후의 한국인도 공감할 만 하다.
"우리나라 연희장의 건축은 약간 서양 제도를 모방하였으나 다만 외양뿐이요, 그 유희하는 규모는 모두 이십 년 전 구풍으로 압제 정치만 알던 시대의 사상을 숭상하여 이도령이니 춘향이니 하는 잡설과 어사니 부사니 하는 기구를 주장하며, 꼳두니 무동이니 의미없는 유희로 다만 부랑자의 도회장이 되어 문명 풍화에는 조금도 유익할 바가 없으니, 이는 연희를 설시하는 자가 학문이 없어 동양의 부패한 풍습만 알 뿐이요, 구경하는 사람도 또한 유의유식하여 무항상한 사람과 경박 허랑하여 무지각한 무리뿐이니 진실로 개탄할 바로다. 하루라도 바삐 그 방법을 개량하여 역사의 선악과 시세의 가부를 재미있게 형용한 후에야 남녀 구경하는 사람의 안목에 만족할 것잉, 외국 살마에게도 조소를 면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