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사부일체. 두목, 사부, 부모는 같은 서열이지만 엄연히 두목이 최상 그 다음이 사부 그 다음이 부모라는 말일 것이다.

 

내 다니던 학교에서는 대략 중2말 부터 공부하는 얘들과 주먹쓰는 애들이 갈라지더라. 나는 변두리 공립중학교를 나왔다. 인근에 사립중고교가 같은 재단에 붙어있었는데 걔들에 비해 우리학교를 동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공부못하는 똥통학교 내지 깡패학교라고 비웃는 모양이었다. 똥통학교라면 구질구질한 공립학교 몰골에 어울리지만 들어와 보니 깡패학교라는 것도 웃기는 말이었다. 그 짓도 돈이 있어야 속력이 붙는건 당연한 일이고 똥통학교가는 것을 방치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당시에도 주소 옮기기 라든가 방법은 있었다) 사실 싸움인들 잘 할 리는 전혀 없는 일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그러나, 공립중학교의 일상은 몹시도 평온하였다. 그래도 1-2학년 때까지는 이렇다할 고생없이 보냈고 오히려 초등학교 말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던 나에게는 안정을 찾는 기간이었다. 그 학교 선생들은 어딘지 공무원 근성이 밴 사람들이라 뭐든 느긋하였다. 이것은 내가 그 후 그 옆 사립학교로 진학한 이후 느끼게 된 것이다. 여선생님들은 편한 생활에 겨웠는지 3학년 되어서 하는 연장수업 보충수업이라고 하던가 하는 것이 하기 싫다는 투정을 했다. 남선생님들은 그 정도 까지는 아니나 공무원 특유의 태만함은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까지 공부하라고 등떠미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에는 <사랑의 꽃피는 나무> 같은 농담드라마가 유행이어서 별다른 뜻없이 우스개 이야기하는게 유행이었고 선생님도 아이들도 그런 우스개 하면서 세월을 낚는데 정신이 없었다.

 

문제는 3학년 때인데 각종 일진써클에 가입된 이들이 이 학교 선생들을 대신해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왜 이 학교가 안좋은 학교인지 실감했다. 왜 깡패학교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학교 일진들은 밖에서는 얻어터져도 안에서는 부리는 위세는 대단했다. 이 시기에는 아이들이 선생님 편에 서야할지 일진들 편에 서야할지 택일(?)을 해야 했다. 사실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선생님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만 할지 아니면 주먹쓰는 아이들 밑에서 돈 몇푼 주면서 알랑거리기도 함께 해야 하느냐 그 정도 문제였다.

 

그러던 중에 기억나는 아이 하나는 부모의 직업이 선생님이었다. 그의 아버지 한테 중3 첫 일이개월의 수업을 들은 일이 있는데 아들이 인근 그 사립학교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암환자로 생의 거의 마지막 몇 달간 용기를 내어 입원실을 나와 그렇게 바람을 쏘이는 중이었다. 병세가 악화되자 학교를 곧 떠났고 학년 말에는 부고를 들었다. 고등학교에 가니까 그 녀석이 한 반인데 살아계신 어머니는 그 재단 중학교 선생님이였다. 웃기는 건 이 놈은 공부보다는 뭐가 그렇게 재미나는지 그 학교 일진들 따라다니는데 정신이 없었고 학년말에는 정학까지 맞았던가. 정학 이유는 먼저 중학교에서는 이유도 안되는 거였다는게 웃기다. 누굴 쳤다거나 돈을 뺐았다거나 이런 류는 전혀 아니었다. 그냥 학교의 입시를 위해 오로지 매진하자는 엄숙주의 입장에 시건방을 떤 죄(?)였는데 다른 학교 같으면 곱게 넘어가거나 애교로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고 더구나 자기 어머니가 재단선생들 중 꽤 지위가 있는데도 그러했다. 대단한 학교는 아니었고 그만큼 크고작은 비리가 많지만 입시나 면학분위기만은 엄한 학교방침 때문으로 짐작된다. 선생님 말씀 듣는 것은 고사하고 그 일진 친구들이 뭐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웠는지 부모 속썩여가며 그렇게 따라다녔는지 옛날에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부모보다 일진이 좋다는 이 생각이 지금은 무섭다.

 

 

 

 

 

Posted by Alcibiad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