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의 북경
월북 혹은 북한 작가들 중에 가장 혐오스러운 사람들은 그 체제 내에 적응과정중 민첩성에서 남다른 행보 보인 이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내 자신이 쭉 그렇게 생각했다. 민주화 이후로, '꼬임에 속아' 아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북한으로 간 후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금지될 뿐 만 아니라 심지어 이용가치 상실로 숙청되기 까지 하는 이들을 대체로 동정의 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중에 한설야는 숙청된 이들 중에 비교적 오래 살아남은 편인 듯 한데 제일 먼저 "김일성장군"에 대한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그래도 작가적 양심에 우스개도 아니고 불쑥 하늘에서 떨어진 새 권력자를 자기 작품의 소재로 쓴 것은 애당초 자기 작품의 가치에 대한 확신 없는 매문가가 할 수 있을 일 정도라고 생각하여 그런 사람이 쓴 소설이나 글을 읽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보통 문학자들의 생각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소설가라 문학가라 부르기가 부끄러울 만큼 낯뜨거운 찬양의 글을 재빠르게 써서 북의 문단권력을 장악한 것에 비해, 그는 여전히 남한에서 꽤나 심각하고 당시 한국문학사상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작가로 생각된다.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민족적 사회적 국가적 문제의식과 낯뜨거울 만큼 자발적인(?) 민첩성을 절대권력자후보에 대한 아첨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는지 과연 인간이란 단순치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특히 한설야의 "북경시대"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의 자전소설 3부작의 두번째라는 <열풍>을 찾아보았는데 끝내 구하지는 못하였다. 한설야는 자기의 선집판이 북한에 나왔을 때 이 <열풍>에 대해 서문을 덧붙였는데 아직 구경하듯 읽은 그 부분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한설야는 조국사랑을 다소간이나 막연히 실천하는 청년의 소박한 인식이 이 체험으로 부터 더 성숙하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새롭게 눈떠야할 인식이란 하나의 민족 안에 두개의 조국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 날의 현정세로 보아 우리 한민족 안에 실질적으로 분단된 두 나라가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설야의 인식은 분단이 아닌 해방이전 그가 북경체험을 하던 그 시절의 인식이기도 한 것이 주목할 점일 것이다. 가까스로 힘겹게 한번 구경은 해볼 수 있었는데 중요한 내용은 그 당시의 조선인들 곧 독립운동가들이 파당을 지어서 서로 음해하면서 자파의 위세를 자랑하며 반대파에 대해서는 심지어 중국관헌들이나 일본관헌들에게 까지 밀고하고 제거하려 든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고도 한민족에게는 더 비극적인 것은 이런 짧막한 한설야의 보고가 그의 북경체험에서 얻은 산 체험에서 나온 그 시대의 역사이자 시대상이라는 점을 대부분 인정한다는 것이다.
한설야의 "열풍"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평론이나 논문들은 나와 있는데 의외로 아직까지 남한에 출판이 안되어 거의 구할 수 없는 글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쓸데없는 책들은 많이 나와서 절반가격에도 팔리고 한다는데 정말로 봐야할 만한 책들은 오히려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