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문학

드라마 <KAIST>

Alcibiades 2015. 1. 17. 07:34

 

드라마 <카이스트> 1기의 마지막회에서 친구로 나오는 두 남자주인공이 잔디밭에 함께 드러눕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교육의 현실이 그러해서 그런지 응당 예비과학기술자의 도전과 성공을 담아야 할 드라마의 끝으로는 조금 어정쩡하다. 중간 중간 드라마에서 작은 성취는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서 주인공들은 극중을 떠나는 것이다. 한때는 이공계 기피 등의 말이 있고 이공계엘리트들의 경쟁적 치학이나 의학 전문대학원행이 이 드라마가 끝난 이후 한국사회의 행보를 보면 그런 그들의 우울한 미래를 기획자들이 의미하고자 한 바의 결과가 아니었는가 짐작하게 된다. 거의 과학기술교육을 다룬 첫 드라마로 그 기획의도는 그 동안 외면 받은 이 분야의 더 많은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각층의 기대와 관심을 반영하여야 한다는 보편적 기대와는 어긋난 결말이었다.

 

이런 다소 어정쩡한 결말이라는 생각을 염두해 두고 마지막 장면을 보니 두 친구 중 한사람은 바로 <모래시계>란 드라마에서 정치깡패 태수의 학생시절 역을 맡았던 배우였다는 것이 곧 오버랩되었다. 생각해보니, <카이스트>에서나 <모래시계>에서나 이 배우의 출현장면은 비슷하다. <모래시계>에서는 그가 대학을 포기하고 암흑가로 뛰쳐나갔다면 <카이스트>에서는 다니던 공대를 자퇴하고 공사판을 전전하며 방황을 거듭하다가 복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두 드라마의 작가는 공히 송지나 씨였다.

 

결국 <카이스트>의 분위기는 밝았지만 그런 한편에서 계속 있었던 우울함과 비관적 전망은 이 주인공이 사형을 당하던 바로 작가의 전작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사회의 형편을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송작가는 작가로서는 우리 세대랑 같이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호랑이선생님>이나 <꾸러기> 같은 어린이 프로를 즐겨보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동일 아동드라마작가가 <인간시장>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물론 박상원의 액션 연기가 빛나는 오락물이었지만)를 써서 크게 히트시킨 것에 한편으로는 만족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간시장>이야 말로 내가 본 최고의 한국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으면서도, 그 후의 <여명의 눈동자>도 그렇고 송작가와 김종학 프로듀서와의 컴비작에는 뭔가 아동극작가의 어딘지 유치한 면들이 있어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거북스러워진다 싶은 점은 단점으로 생각했었다. 사실, <인간시장>의 후속컴비작품이자 장안의 대화자작인 <여명의 눈동자>도 <모래시계>도 그리 열심히 시청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명의 눈동자>는 재방송으로도 많이 본 것 같긴 한데, <모래시계>는 어딘지 많이 거슬렸던지 거의 외면했고 대략 태수가 나중에 사형당한다는 이야기나 듣는 정도였다. 사실 나는 그게 좀 유치하여서 그랬는데 최근 이 <모래시계>를 보니 유치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시까지도 세상물정을 잘 모르던 내가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만큼 "한국사회의 현실" 혹은 "치부"를 영상에 비교적 잘 옮긴 드라마라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그 옮기는 과정은 누구나 다 이해할 만큼 그렇게 자세하지는 않다. 무슨 비리사건 터질 때마다 "꼬리짜르기" "몸통찾기" 이야기가 나오듯 이 드라마 역시 어느 정도 꼬리짜르기가 된 그러니까 몸통이 없고 조폭의 행동대장급인 태수나 신임검사 수준의 강우석이 결국 그들 손에 놀아나는 정도만 보인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을 움직이는 진짜 실세들은 나오지 않는다. 오죽하면, 태수 정도를 죽여서 뭐가 달라지냐는 항변이 드라마의 대미일 정도다. 그리고, 그 항변은 <카이스트> 이후의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적용될 말이다. 작가의 다른 작들과 달리 <모래시계>는 유난히 어두우면서도 현실적이었다고 느낀다. 더불어 나는 <꾸러기>에서 <모래시계>로 작가의 시선이 전혀 다른 두 세계로 자연스레 옮아간 것에 비해 이제야 이 후자의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늦은 성장을 한탄하였다. 또, <모래시계>하면 우리시대에 크게 히트쳤던 또 하나의 드라마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무풍지대>였다. 그 드라마는 내가 경기를 일으킬 만큼 혐오하는 드라마인데 이유는 이 드라마보고 조폭이나 싸움꾼이 된다는 약간 "맛이간" 소리하는 또래놈들이 싫어서였다. 당시 내 주위에 그런 인간들로 들끓었았는데 웃기는 것은 그런 놈들이 멀쩡히 공부잘하는 나를 슬며시 비웃고 간 기억이 있다. 아마 내가 처음 <모래시계> 잘 보지도 않고 유치하다고 단정했던 것도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태수가 "나랏일에 깡패키우는 일도 들어갑니까"는 질문이다. 드라마에 나랏일하는 이는 그 질문에 쓰기에 따라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고 대답한다. 폭력도 고상한 목적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엔 양보한다고 해도, 그 목적의 공익성마저 의심스런 상황이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이 장면에서 옛 기억의 단편이 내 머리 속을 때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