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
1) 내가 광주 관련 유언비어를 들었던 것은 내 또래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87년 6월 직후였다. 그 전 나는 텔레비젼에서 광주관련 특집을 몇번 보았다. 나는 뉴스와 시사를 남달리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ㅌ다. 하지만 진실은 까맣게 몰랐다.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특집프로를 아무리 열심히 보았지만 특이했던 것은 정작 언제 일어났던 일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당시는 데모를 하지 말자는 데모마저 있었다"라는 멘트로 나는 이것을 허황되게 4.19 중에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광주 사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광주 관련 특집들이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로도 공통점은 그렇게 깊이 있게 누구나 잘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다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광주 유언비어를 처음 들었던 것은 내가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동네 아주머니로 부터였다. 그 아주머니 아들은 내 동네 꼬붕쯤 되어 있었다. 내 스타일상 그리 말 잘 듣는 꼬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때 어쨌든 이 아주머니와 그 아들들과 나는 굉장히 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아주머니가 나는 제껴두고 어머니와 정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그러면서도 나 들으라고 작심하고 말을 하신다. 그 직전까지 즉 6.29이전까지는 동네에서든 어디서든간에 정치이야기는 금물이었다.
그 때 처음 광주관련 유언비어를 들었다.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이야기였다. 당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진보요 정의구현이었으나 알고 보니 조금 지나친 유언비어였음이 드러난 경우다. 그 아주머니 말이 이랬다. 특이하게도 배를 가른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임산부의 배를 갈랐을 때 피가 터지는 모양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기 때문에 공수부대원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혹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름다움이란 마치 기생오래비 처럼 곱상하게 되어 있던 나의 외모를 빗댄 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거짓이요 유언비어다. 물론 광주의 상황상 비슷한 일로 임산부가 폭행된 일은 있었다고 하고 광주의 실정상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누가 아는가. 그러나, 예쁜 구경을 하기 위해 배를 갈랐다는 것은 명백한 유언비어일 것이다. 배를 가른 이유는 하나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지 구경삼아 장난삼아 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배를 갈랐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런 유언비어가 퍼진 동기는 명백하다. 불신과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의도로 행해졌거나 그런 거짓이 유포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광주에서 이른바 '제5열'이 활동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광주에 유언비어가 있었다는 것은 제5열이 활동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 아주머니가 같은 자리에서 사복경찰 즉 형사에 대해서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시장에서든 어디서든 간에 머리가 짧고 귀를 드러내는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사복경찰이라는 말이었다.
진짜 웃기고도 무서운 것은 이 아줌마네 사는 집은 우리 어린이들의 '우리 동네'의 마지막 집이었다. 딱 그 집 아이까지만 우리동네의 멤버로 같이 놀았고 그 뒷집 부터는 (거기부터 다른 골목길이었다) 별도의 다른 동네를 구성하여서 우리 '동네' 아이들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건너 집에는 실제로 경찰복을 입는 경찰아저씨가 살았는데 딸만 둘이었다. 그런데 그 동네 아이들 중에 유독 그 둘만 그 동네 아이들과 교류하지 않았었다.
2) 중학교에 진학했더니 어떤 어느 정도는 미모의 처녀선생이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미(美)"에 관해서. 일본인들은 죄다 혼혈아이며 혼혈아는 무조건 외모가 출중한다는 것이다. 요즘같으면 무슨 환빠나 할 요상한 논리를 펴는가 껄껄 웃겠는데 나름 당시로서는 엘리트 여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진짜 웃겼다. 그 때도 그녀는 나를 주시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혼혈아가 아니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굴 가리켜서 그런 말을 한 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