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실화반 픽션반의 스토리다. 특히 머리쪽에서 좀 늦는 사람을 형광등이라고 하던가.
장면1
양아치란 말이 주로 무슨 뜻으로 쓰이나. 원래는 거지란 말인데 거지가 아니라도 양아치 양아치하든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최근엔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절친한 친구 하나를 그를 아는 또 다른 녀석이 그렇게 한마디로 정리를 하더라. 이것 조차 꽤 된 이야기지. 사실 나는 그와는 과거 특별한 사이로 그 모욕엔 거부감이 없지 않았으나 그 표현엔 뭔가 그의 당시 몰골을 꽤 적절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은근히 들게 했다. 당시엔 꽤 내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자랑스런 친구였는데 그 후 십년 후 만났을 때는 솔직히 외모부터가 혐오감을 주어 친구였음을 부인하고 싶을 정도였었다. 가령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이 삼청교육대에 있는 최민수를 면회한 것을 기억하는가. 그 때 나는 그의 인상에게 풍기는 역한 기운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을 꾹 참으면서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처럼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옛 친구였기에.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을 만날 쯤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 반납했던 SF소설이 기억나는데 제목은 모르겠고 아이작 아시모프가 썼던가 첫머리에 저항군들이 자신들의 지도자가 한낱 미치광이였음을 알고 놀라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놀랐다가 나머지는 나중에 읽자 읽자 하다가 지금은 책 제목도 잊어버려 영원히 읽지 못하고 있긴 하다.
장면2
외국가서 천만다행 같이 다닐 사람을 만났다. 그러고 보면 그 이도 과거 어린 시절 외모는 소탈하고 성격은 푸근한 그 시절의 그 친구와 많이 닮았는데 우리보다는 현실적이고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그 나라사람인 듯한 서양여자가 무친 가이드나 되어 줄 것 처럼 말을 걸어오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자꾸 귀찮아 지는 것이었다. 좀 이상하긴 해도 그 나라 말을 쓰는 사람이라 뭘 진지하게 세일즈라도 하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던가. 그래 내 새로 알게된 형씨한테 "형씨, 이 여자 왜 이래?" 이런 신호를 보냈다. 그 형씨는 말없이 웃다가 그를 물리치고 나서 나에게
"모르셨어요. 하고 다니는 것 부터가 이상하잖아요. 자기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러고 보니 입고 다니는 옷 자체는 우리가 입는 보통 옷보다는 고급이긴 했는데 분홍색 그리고 그 밖에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뒤엉킨 정신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면3
벌써 10년 이상 된 일이로구나. 지하철에 거지는 아니나 안절부절 못한다고나 할까 왠지 불안해 보이는 이들이 패거리 지어 다니는데 기분이 좋지 않고 불안했다. 알고보니 벙어리인 듯 했는데 뭐랄까 말을 못하는데다가 자신들의 불만을 쉽게 해소하지 못해서 금방 폭발할 것 같이 동작 하나하나가 주변에 있는 것은 다 때려부술 것 같이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어떤 사기꾼이겠지만 건장에 보이는 청년 지하철걸인은 불안하다 못해 그들에게 형님 이렇게 인사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이해안되는 장면이긴 하다. 볼 때마다 냉소적으로 저희들기리 낄낄거리며 기합들어간 바디랭귀지로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아마도 자기들 그룹외에는 뭔가 배타심과 적의를 가졌던가 보다. 그들이 잠깐이 나마 흥분을 가라앉히는 때로 유일한 것은 "도를 아십니까"라고 말을 걸 듯한 한 명의 성자나 도인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였다. 그 패거리와 그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보였다. 한쪽은 건달이나 깡패같았고 다른 쪽은 성자 같았으니. 후자의 경우 그들이 가진 절제되지 않은 분노나 과격함과는 전혀 반대였지만 같이 잘 어울리며 수화를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역시 같은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측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이 다 뭔가 공통점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사람보는 눈이 없다는 것. 뭔가 문제가 있는 인간을 보고 형광등 처럼 늦거나 거꾸로 좋은 친구로만 생각을 하였으니 말이다. 마치 걸인에게서 나는 역한 냄새를 맡지 못하는 축농증 환자(축농증 환자가 냄새를 잘 못맡나?) 처럼 분별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그 후의 순탄치 못하고 잘 풀리지 않는 인생도 그와 무관한 것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