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 중에서 예수에 대한 살의가 탄생했다는 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구체화된 것은 예수가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는 중에 드디어 죽은 자였던 라자로(Lazarus)를 무덤에서 살려내었던 것이라고 <요한복음>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유대인들의 감시와 질시가 심한 중에 예수는 이러한 징표들이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 것을 예견하고 한탄했다. 예수 또한 이들의 한심한 행태가 개선되고 전세계 백성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죽음으로써 가능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아무튼 죽은 자를 부활시킨 예수의 기적을 본 바리새인 등 유대지도층은 그것을 보고 오히려 경악하여 하루 라도 빨리 그를 죽여야 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들의 논리는 예수를 그대로 두면 온 유대 백성이 그를 따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가 유대민족을 절멸시킬 것이라 민족을 위해서는 예수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는 그들의 모함과 시험에 항상 주의하여 왔다. 그래서 로마황제에 내는 세금에도 반대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말로 위험을 모면했던 것이며, 빌라도 앞에서는 유대의 왕임을 인정하면서도 "내 나라는 지상에 있지 않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유다의 배신으로 끌려온 유대법정 산헤드린 앞에서 드디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재촉할 빌미를 자청해서 제공한다. 마태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대제사장의 심문에 단지 "네가 메시아(구세주)며 그 찬송받는 이의 아들이냐?"라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에 그는 드디어 그들이 원하는 답을 주었다. 예수가 단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면 구세주나 신의 아들이란 자칭이 죽을 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다. 오른편에 앉아 하늘 구름을 타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 고대 근동 지방의 자칭 즉 1인칭으로 예수 또한 많이 쓰던 말)를 너희가 보리라"라고 답한다. 이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없다는 듯 자신의 옷을 찢는다. 구름타는 인자라는 말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로 다니엘서 7장에 따라 예수가 신이나 그와 같은 자를 "참칭"하는 것으로 신성모독의 죄로 볼 수가 있었다. 유대장로들은 이렇게 해서 예수의 입에서 그렇게 바라던 말을 얻어냈고 빌라도의 로마법정에다가는 엉뚱하게도 그가 "유대의 왕"을 참칭했다고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고발했다. 신성모독은 죽을 죄이지만 당시 산헤드린은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고발을 듣고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며 헤롯에게 돌려보냈으나 예수가 그에 전혀 응하지 않았자 다시 예수는 빌라도에게로 송환돼어 그에 의해 "유대의 왕"이란 죄패를 달고 십자가형을 받게 된다.
산헤드린에 끌려온 예수를 그린 마드라조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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