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은 입시를 위해서라도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작가가 되어버린 듯하다. 풍자작가 였더니 만큼 <치숙> 같은 그의 소설은 입시전쟁 중에도 재밌게 읽을 만한 내용과 분량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것도 민주화 이후의 일이지 해금작가다하는 시대 이전으로 거스르면 남한에서는 빛을 보기 어려웠던 작가가 아니었나 싶다. 그 중에서 대표작이라는 <태평천하>를 생각하면 사실 집안 어른 중에 그 주인공인 윤직원 영감과 얼마만치나 비슷한 면이 있다. 족보상으로 나도 그 밑 직계후손이다. 윤직원이야 워낙 '거시기'한 악역이라 구런 세세한 악까지야 일치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구한말로는 꽤나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밑천으로 군수(郡守) 자리 한자리라도 구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셨다는 것 한가지는 비슷하다. 윤직원이 양반이 아닌 출신으로 돈을 모아 족보에 금칠하고 자기 자식 이하 후손들에게 군수를 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는데 이 분은 후손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려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같지 않다. 아무튼 그 분도 국권피탈 이전에는 문벌로는 전혀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아무튼 군수 되는 것을 평생의 이상(理想)으로 삼았으나 종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제로는 면장(面長)에 만족해야 했었다는 이야기 정도를 들었다. 왜정 말에는 군수도 조선사람을 많이 뽑았다고 하는데 당시는 그런 때가 아니어서 였지 세월을 조금만 거슬러 내려왔어도 군수달았을 거란다.
내가 집안 어른을 굳이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한개 이상이었던 것이 어떤 내력을 잘 모를 이들에게는 일언으로 친일민족반역의 낙인이 찍히는 것은 좀 유감인 면이 있다. 요즘 진보나 야당 쪽에서 자신들이 정권 잡았을 때는 정작 잘하진 못하고 아직까지 군사독재세력이니 친일파세력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인 데다가, 가끔은 정작 그 시대 자기 조상은 그래도 독립운동은 아니라도 올바른 소신은 지키고 사는 줄 알다가 졸지에 제2 제3의 김삿갓된 사람도 많다더라는 것이 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내가 본 중에 창비교양문고 판의 해설을 쓴 이주형의 해설이 또한 좀 거슬리는 면이 있다. 대체로 87년에서 93년 사이 이념과 이상 만능의 시대에 씌어져서 그런지 거칠고 문체나 어법이 심지어 북한출판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다. 가령 다음의 것이 그렇다.
마지막 장은 앞장에 이어지는 시간인 점심때쯤. 창식이 들어와 종학이 사상관계 즉 사회주의운동 참여로 체포되었다는 간밤의 전보내용을 알리자 윤직원은 분노하여 날뛴다.
"분노하여 날뛴다". 꼭 같지는 않지만 왠지 다른 조금 피상적인 글전개하는 방식이 북한식의 글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빈약한 근거에 비해 눈에 띄는 인민재판식 낙인찍기.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사회변혁이고, 따라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저항적 ·진보적 세력─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 등─을 증오했다. 사회 ·독립운동가는 '부랑당'이요, '화적'이며, 그들의 운동은 "생판 남의 것을 뺏어다가 즈덜 창사구를 채러" 드는 행위로 규정되었다. 윤직원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한마디로 반민족 ·반사회적인 것이며, 역사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윤직원의 행태가 반민족이요 반사회적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지만 역사의 발전에 역행한다 함은 과연 그렇게 단언할 성질인지 의아해진다.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도 객관적인 말도 아닌데 이렇게 확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지간히 이념에 푹 취한 상태가 아니면 할 수 없을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슬그머니 군사독재자들에게 그 반대편의 진영이나 좌파 진보가 흔히 하듯 상대의 잘못을 자기 정당화의 근거로 바로 뒤바꾸는 것도 요즘와서 읽기에는 별로 편치 않다. 윤직원의 잘못은 잘못이고 그가 말하는 진보나 사회주의적 행동과 주장의 정당성은 또 별개여야 하지 않나 묻고 싶다. 사실 채만식이 <치숙>에서도 결국은 비슷한 인물들을 무대에 올렸지만 그는 결국 양비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해설자는 좀 편향적인데 확신적인 것 같다. 그것을 해설자는 진보하였다 할지는 모른다.
좀 표현상 거칠고 거슬리는 면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설자의 해설이 정해진 분량상 그리 효과적이지 않은 엉뚱한 해설은 아닌 것 같다. 한 켠에 채만식의 말년 친일의 과오와 그 반성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결국은 윤직원이를 친일파민족반역자로 낙인찍지만 도로 '그 놈이 그 놈이다' '다 도둑놈이다'라 그게 되어 버린 것이다.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랜다
가 될 수도 있다는데 아마도 한국사회의 비극이 있는 것이겠다란 생각이 든다. 인간적으로 동일한 심판대에 그 글을 쓴 해설자를 올려논다면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래서 이제 대학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 공부해야 할 어린 이들에게 까지 가장 자극적이고 선동의 소재가 될 만한 치부에만 집중 내력도 자세히 모를 자기 조상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낙인찍을 자아비판을 하게 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랠 수 밖에 없는 세태가 왜 계속되는지 헤아릴 줄 아는 안목을 찬찬히 가르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내가 채만식이나 해설자의 말만 듣고 내력도 잘 알지 못하는 조상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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