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주연의 한국의 월남전과 참전자들의 후유증을 조명한 영화. 극심한 전쟁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을 겪으며 헛소리만 해대는 이경영이 분한 변진수 일병을 본인 자신이 건넨 권총과 함께 죽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심적 갈등 끝에 그 청을 받아준다는 내용이다. 개정판 말고 20년 전에 나온 동명 원작소설을 읽어보니 주요 줄거리는 상당히 다르다. 양민학살을 덮기 위해 강요에 의해 공범이 되어 강요에 의해 학살에 가담한 것이 변진수 일병이 실성하게 된 계기로 설명되는 영화에 비해, 소설에서는 그는 원래부터 겁장이로 실전 상황에 죽음의 공포를 만나면서 그리 된다. 전쟁이란 극도로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짐승 처럼 살아가야 했던 변일병은 귀국 후 모든 이들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민학살? 영화가 나온 것은 1992년이고 처음 소설이 선 보인 것은 80년대라니 어느 쪽이 작가의 본 의도에 가까운 지 모르겠으나,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반자전적 소설의 분위기로 서술자인 한기주 병장에 촛점을 맞추는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는 변진수의 비중이 높아진다. 이 못난 전우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일말의 "양심"을 지키려다 순교한 것으로 볼 수 있게 하는데, 소설에서는 그저 죽는게 차라리 나을 낙오자나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겁장이일 뿐이다. 애인의 배신, 지뢰와 부비트랩, 그 만큼 위험한 베트콩들, 비극적인 패배주의가 온몸에 베인 마을 촌장. 책을 덮으니, 이 만큼은 아니더라도 생존이 버거울 만큼의 황량하고 삭막한 이 현실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하는 걱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