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의기소침하게 한 부왕(父王)의 의문의 죽음의 배후에 있는 모후(母后)와 삼촌의 불륜. 알고보니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거의 당대에 있었던 결코 중요치 않다고 할 수 없는 실제의 역사적 사실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스코틀랜드 왕국의 여왕이었던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다.

 

그녀는 프랑스로 부터 귀국해서 던리공(Lord Darnley)인 4촌 헨리 스튜어트(Henry Stuart)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러나, 이 결혼은 정략적인 계산이 없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곧, 던리는 여왕의 부군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공동통치를 요구하지만 여왕은 거절하는 등 부부 사이에 불화가 싹튼다.

 

1567년 2월 부부는 커크 오 필드(커크 오 필드)에서 요양 중에 있었는데, 2월 10일 아침 그들이 머물던 교회내 건물이 폭파되었고 반라상태의 던리와 그의 시종이 인근 과수원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여왕은 인근 결혼식 참석차 부재중이었다. 혐의자 보스웰(Bothwell) 백작은 일단 무죄 방면된 뒤 여왕의 부군이 된다.

 

과수원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과 일단 혐의를 피한 음모자가 무죄 방면된 것은 <햄릿> 그대로다. 그 부부 사이에서는 아주 고귀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는 것도 공통이다. 하지만 이 아이가 햄릿처럼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여왕이 그다지 정숙과 거리가 멀고 애인을 두었던 것에서 이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는 의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들 부부의 불화의 다른 이유도 되었다. 하긴, 국두(菊豆) 같은 영화에서는 그것과 상관없는 엉뚱한 복수를 한 사생아가 행하는 일도 있다. 당시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에는 정의가 살아있었는지 국왕이라도 이런 일이 쉽게 용서될 수 없었다. 그들의 신하들에 의해 여왕은 구금되었다가 영국으로 도망가지만 거기서 끝내 자기의 죄값을 받는다. 보스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건 당시 던리 살해 사건을 그린 그림

 

 

 

 

'소설과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임모 병장 기사를 보니  (0) 2014.06.23
For Whom the Bell Tolls  (0) 2014.06.22
고(故) 박완서(朴婉緖) 님 사진  (0) 2014.06.20
혹시  (0) 2014.06.11
행복이 뭔지?  (0) 2014.05.22
Posted by Alcibiad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