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dreams,,,,,,
이 영화가 본국에서 개봉된 것이 1986년이라고 한다. 기묘한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이 영화를 모르던 그 때 한국에서는 마침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시작되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첫 사건이 있은지 불과 4-5일 정도 안에 미국에서 개봉되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한창 제작되고 있었을 때 범인은 연쇄살인을 위한 사전연습과도 같은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얼굴과 인상은 살인사건 이전에도 여타 성범죄 등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살인의 추억> 감독 말대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시작은 그랬다.
뜬금없고 관계없는 얘기지만 나의 1986년은 그랬다. 그 해 담임선생님이 자꾸 내가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는 인상을 나자신을 비롯한 주변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내내 노력하였다. 학기초 반재미로 보는 실력평가에서 잘봤더라 이런 싱거운 이야기를 늙으막한 나이에 모두 보는 앞에서 했다. 그 이전에 나는 공부는 중간쯤에 선생들로 부터 우등생으로 인정받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화성사건이 일어날 때 쯤 그는 우리 국민학교에서 우등생 공식인정증과도 같은 반장선거후보명단에 나를 생전 처음으로 올려주었다. 전학기임원이 빠진 자리 때문에 올라가는 거였지만 그 당시에 나로서는 어깨를 들썩일 만한 일이었다. 나는 우등생 뿐 만 아니라 그의 덕에 나이에도 맞지 않는 촉망받는 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소 성급한 우등생 진입이었다. 촌지 따위가 성적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당시의 초등학교에서 지금 생각하면 나는 좀더 별볼일 없는 학생으로 남을 수 있었는데 그에 의해서 성급하게 우등생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때 이야기다.
그 학년의 말쯤에 나는 한번 불량배에게 은행가는 길에 통장을 털릴 뻔한 일이 있었다. 무서운 것은 그가 우리집부터 따라온 것이 틀림없고 우리집 위치를 알고 있을 거라는 것이였다. 불량배의 따라오라는 말을 듣지 않고 도망갔었으면서 겁과 조심성이 반반씩 많은 나는 그 겨울방학에 집밖으로 단 한발자국을 나가지 않았었다. 그리고 봄이 되어 드디어 학교에 갈 무렵에야 그 공포를 떨쳐낼 수 있었다. 겨우 용기를 낸 어둔 방구석에서 몸을 일으킬 바로 그 무렵 드디어 '화성연쇄살인'이 화제가 되었다. 봄이 되자 범인의 볏짚단 속에 숨겨둔 시체들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볏짚단이란 말을 들으니 그당시 어디서 들은 옛날이야기 한토막이 생각이 났던 것 같다. 가을내 거둔 수확을 서로 양보한다는 미덕에 얽힌 이야기인데. 농촌에서 자라지 않은 내가 볏짚단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아무튼 그 날 그렇게 내가 방구석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 겨우내 계속되었던 그 악몽의 끝이었다. 나는 그렇게 뉴스에서 그 사건에 대해 듣던 것이 친구 집에서 였다는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었는데 여러 모로 생각해보면 장소에 관해서는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