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 나이 정도쯤에 한 국어선생님이 <데미안>은 커서 보기에는 유치하다고 했다. 부제 역시 "에밀 싱클레어의 어린시절 이야기"이다. 소설 <데미안>을 읽다보면 선악의 이분법에 가려있고 슬며시 암시되어 있는 또 하나의 작가가 열렬히 하고 싶어하였던 말이 있는데 서언에서도 말했듯 그것은 모든 인간에 반복되는 "예수의 수난"에 관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을 때 같이 형을 받았던 두 명의 악인에 관한 다소 감상적인 이야기에 대해 데미안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짧게 언급된다. 나도 어린 시절 교회에 이리 저리 끌려가서 설교를 들은 바가 있는데 어린이용 설교에 거의 단골로 두명의 도둑 중에 한 사람은 예수를 마지막 순간 믿는다고 말해서 천국에 가고 한 사람은 코웃음처서 지옥에 떨어졌노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안다.
이 이야기의 감동적인 부분은 바로 예수와 함께 고대 세계의 가장 잔인한 형벌의 상징인 십자가의 형을 받은 그런 한편으로 강도라 일컬어지는 두 사람이 실은 유대독립운동가를 이르는 말이라는 점을 확인할 때 분명해 질 것이다. 예를 들어 국권피탈초 유명한 안악사건에 적용된 죄목엔 "강도 및 강도미수죄"가 포함된 것과 비교가 될 일이다.
한국의 소설로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가 이 주제를 다룬 것 같다. 훑어보면 첫 장부터 "메시아를 찾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종교적 미신적인 한국풍토에 은근 냉소적인 저자의 관념이 읽혀지고 그 점에는 공감할만 하다. 사실 당시의 열악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기독교적 지식에 있어서 부정확한 면이 종종 보여 한국의 대표작가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역시 개운치 않은 감을 준다. 하지만, 당시 식민지기를 갖 탈피 세계최빈국의 위치에 있던 한국문화의 수준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
다만, 이 로마와 그에 예속된 유대민족과의 대립을 한 테마로 한 소설이 저자가 식민지 시절 구상해 두었던 소재라는 것을 보면 결국 한국의 독립운동과정을 빗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소설의 흐름이 정말 한국적인 근성을 잘 담은 면모가 보인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죽음을 앞에 둔 두 죄수 예수와 사반이 죽을 때까지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해가며 논쟁을 벌인다는 게 소설의 대미다. 이런 장면을 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목전에 두고도 상대정적과의 싸움에나 몰두했던 한국인의 타고났다는 당파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부모의 초상을 치르면서도 유산을 놓고 싸우는 듯한 느낌이랄까. "너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다" "너 때문에 나라가 망했지 않느냐" 그런 말을 듣는 듯 귓가에 울린다. 그런면에서 꽤 "한국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왠지 예수수난의 본래의 의미보다는 사반의 당파성 호승심 따위가 본말을 전도시킨 듯 공허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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