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등학교 때 집은 전혀 다른 쪽에 있으면서 우연히 같은 자리에 앉아 친해진 나를 비롯 세 아이들이 있었다. 좀 순한 아이들이라 뜻이 잘 맞는 것 처럼 보였다. 졸업 무렵 그 중 한 녀석을 마지막으로 봤던 게 아마 무슨 도서관 앞이던가? 난 생각도 못했었는데 아주 오랜 만에 보고 녀석을 아는 체 인사를 건네는데 전에 없이 분위기가 쌀쌀했다. 우리들의 우정이 더 계속될 수 없을 것 처럼 굴었다. 마치 이게 마지막이 될 것 처럼 나에게 이것 이것은 잘 챙기니 뭐 이런 식의 말을 계속 늘어 놓는데 저가 나를 걱정할 입장인가 해서 이 녀석이 왜 이러나 뭘 잘못 먹었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후로 말도 없이 멀리 이사를 가 버린 듯 하였다.

 

나머지 한 녀석은 그 보다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었지만 점점 이상한 녀석으로 변해 같다. 그냥 내 앞에서 당장 꺼지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 녀석을 보면서 앞서 내가 받았던 인사를 항상 마음에 두었다. 지금 당장 대놓고는 못할 말이나 적어도 앞서 그 녀석이 마지막에 갖추어준 예의만큼은 차려주어야 겠다고 늘 생각하고 이 나머지 한 녀석을 대했던 것 같다.

 

 

2.

초등학교 상급학년 때 겁이 많은 나는 깡패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을 많이 품어왔다. 그런데 마침 그 날이 왔다. 발단은 엉뚱하게 동네에서 가장 친했던 녀석에게서 비롯되었다. 이 녀석이 욕구불만이 있어서 내가 마침 은행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 고약한 장난을 걸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통장"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었던 것이다. 지나가던 불량한 어느 청소년이 이 것을 아마 들었던 것 같다. 그 녀석의 장난이 끝나고 나는 홀로 은행을 향했다. 은행으로 가는 길 까지 외진 골목길은 없었다. 골목으로 향하는 길은 있었지만 나는 겁이 많은 만큼이나 그에 대해 늘 대비를 하는 편이라 그런 아이들에게 틈을 주지는 않았다. 서너살이나 많아 보이는 아이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뭐라고 말을 걸어 오면서 음침한 골목으로 갔다. 내게 말걸리 없는 모르는 사람이라 나는 무시했다. 그러다가 비로소 나에게 좀 큰 소리로 위협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도망가려구. 다 알아. 따라와"

 

"통장"이란 말에 눈과 귀가 멀어버린 어설픈 불량배였던 것 같다. 골목 입구 쯤에는 호떡장수 아주머니도 있었는데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도 근심어린 표정으로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있기는 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가야 하나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할까? 어설픈 불량배는 그 순간도 내가 묵묵히 따라오리라고 생각하고 얼굴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한창 때의 청소년을 달리기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근심이 있지만 은행을 향해서 적어도 내가 10보 정도는 앞서 있었다. 한 50m 앞부터는 소위 차길이라는 한길이 나온다. 나는 뛰기로 결심하고 총알같이 뛰었다. 그렇게 전력으로 뛰어 본적은 어떤 운동회에서 빼곤 없었을 것이다. 한길 쯤에서 보고 있던 남녀청년 서넛(남자는 하나였다. 둘만 됐더라도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이 사정도 모르고 "우와 얘 진짜 빠르다"이러고 있었는데, 그 때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계속 뛰어야할지 망설이게 했다. 나는 은행까지 왔지만 그곳에서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미 집에서 은행까지 경로를 그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웠다. 언젠가 우리 집 근처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 끝에 한정거장을 거슬러 올라가서 거기서 세정거장 쯤 떨어진 곳으로 이사해 있던 오랜 친구 집으로 갔다. 비로소 일시적으로 안심 할 수 있었다. 그 녀석 집은 우리 집과 달리 형제가 많았는데 집안사정 자체가 대학진학을 아예 거의 막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오랜 만에 그 녀석 형을 만났다. 형이 이런저런 안심되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불량배들을 화제로 했던 그 중 기억나는 대화는 이 친구 녀석 하는 말이

 

"대학생이 얘들 때리고 돈을 뺐었다"

 

이런 말인데 친구는 대학생과 대학생 나이의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런 동생의 언어습관을 늘 안좋게 생각했던 형은

 

"이 자식아. 대학생이 뭔데 그런 짓을 하냐. 니가 대학생이 뭔줄 아냐"

 

라고 말했다. 당시 대학생이 드물던 시절의 기준으로는 형의 말이 맞는데 세월이 흐를 수록 대학생 비율도 늘고 그들에 대한 대접이 전과 같지 않고 또 대학생 범죄자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형 말이 마냥 맞다고 생각되었는데 점점 동생 말이 맞는 세상이 되어 가는구나.

 

 

Posted by Alcibi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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