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소설과 문학 2014. 6. 11. 00:21

 

푸쉬킨의 아름다운 시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에서 "참고 견디라 기쁜 날이 오리니"라는 구절에 관해서 혹시 푸쉬킨이 이걸 보고 쓴 것이 아닐까하는 비슷한 구절을 고대의 유명 시인의 서사시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고난을 참고 견뎌 로마 건국의 초석을 다진 트로이의 망명자 아이네이스를 노래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이다.

 

 

O socii—neque enim ignari sumus ante malorum—
O passi graviora, dabit deus his quoque finem.
Vos et Scyllaeam rabiem penitusque sonantis
accestis scopulos, vos et Cyclopea saxa
experti: revocate animos, maestumque timorem
mittite: forsan et haec olim meminisse iuvabit.
Per varios casus, per tot discrimina rerum
tendimus in Latium; sedes ubi fata quietas
ostendunt; illic fas regna resurgere Troiae.
Durate, et vosmet rebus servate secundis.”

 

라틴어는 잘 모르지만 대략 이런저런 책들을 모아 번역을 해보자면

 

오! 동지들, 우리들에겐 이와 같은 곤경에 전부터 익숙했고.

더한 일도 겼었소. 신께서 이번에도 끝이 나게 해주실 것이오.

그대들은 성난 스킬라(Scylla)[각주:1]의 윙윙거리는 절벽과 동굴을

헤쳐나갔으며, 키클롭스(Cyclops)[각주:2]의 바위도

겪어냈소. 이제 마음을 챙기고 두려움은

떨쳐내시오. 아마도 언젠가 행복하게 추억하게 될 테니까요.

온갖 파란과 온갖 위험을 끝없이 헤쳐가면서 결국

우리는 라티움에 도달하리니, 그 곳은 운명이 우리에게 안식처를

줄 곳이오 우리 트로이가 새롭게 일어날 곳입니다.

참고 견디어 스스로를 보존하시오. 밝은 내일을 위해서.

 

 

그러니까 푸쉬킨의 시에서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와 아이네이스에서

 

Durate, et vosmet rebus servate secundis.

 

는 비슷해 보이는데, 혹시 푸쉬킨이 아이네이스의 이 구절에서 착상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닌게 아니라 어떤 푸쉬킨에 대한 웹페이지를 보니

 

http://pushkiniana.org/index.php/14-notes/221-pellicer-notes14

 

푸쉬킨은 동시대의 오비디우스나 호라티우스는 모델로 삼았을 지언정 베르킬리우스는 분명치 않은 가운데서도 베르길리우스의 <목가>를 암시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자세히는 다 읽지 않았지만.

 

 

 

베르길리우스의 <목가> 제3권의 5세기 수사본이라 한다

 

이렇게 보면 푸쉬킨의 "참고 견디라"함도 결국은 무조건적인 고통의 감내가 아닌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한마디로 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이야기라 보아야 할 것이다.

 

 

  1. 카리브디스(Charybdis)와 함께 해협(특히 시칠리아와 이탈리아간 메시나 해협)에서 선원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본문으로]
  2. 외눈을 가진 거인 괴물. 호메로스의 오딧세우스가 난파되었던 곳에 아이네이스 일행 역시 상륙했는데 오딧세우스 일행이었던 인물을 구조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Alcibi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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