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십자군 관련 특집 프로 같은데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은자 삐에르(Peter the Hermit)라는 몰염치한 광신도가 있다. 그는 당시 투르크의 부상으로 어수선하던 성지순례에 다녀오면서 겪은 고통을 호소했는데, 실제로는 그가 정말 성지를 다녀왔는지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또한, 당대의 야심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와 의기투합했다. 꿈속에서 주님이 나타나 그에게 십자군을 일으킬 것을 말씀하셨다고 설교하고 다녔다. 그는 민중들을 선동해 자발적으로 십자군의 대의를 따르도록 했다. 실질적으로 십자군운동을 일으킨 것이 바로 그라고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 모은 오합지졸 어중이 떠중이들의 군대가 기사들의 정식 십자군에 앞선 소위 "군중십자군"이다. 그들은 아시아 보다는 유럽에서 성전(聖戰)을 치뤘다.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과정에서 독일에서 1096년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그와 의기투합한 이 중에 무일푼의 월터(Walter the Penniless)란 이가 있는데 별명에서 짐작되듯, 모자르는 노자를 충당하고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서는 약탈과 방화 살육 등 못하는게 없을만큼 두꺼운 얼굴을 가진 이였다. 동로마제국의 군주와 신민들에게 이들은 당연히 환영받을 사람이기 조력자나 구원자 보다는 빨리 경내에서 축출할 위험한 외부인들에 불과했다. 이러다가 투르크와 전쟁을 치르기도 전 굶어죽거나 그 나마 다행스럽게 유럽내 발칸의 슬라브 영주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는 경우가 부지기 수였다. 동로마는 경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전 이 귀찮은 사람들을 재빨리 바다건너 아시아로 보내버렸고, 대다수가 역시 학살당하거나 투르크에 의해 노예로 팔리는 신세였다.

 

그러함에도, 은자 삐에르만은 운좋게 살아남았다.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소명이 아직 채 다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살아남은 잔당들은 드디어 귀족십자군의 정식 군대의 합류했고 드디어 여러 노고 끝에 예루살렘에 함께 입성하였다. 삐에르의 경우 그 중에서도 또 다른 사건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전일 무고한 민중을 사지로 몰았던 전력에 조금도 기죽지 않은 그는 귀족들 틈에서도 특유의 입심을 발휘하며 영향력을 유지한 것 같다. 안티오키아 포위에서 안티오키아 성을 차지하고도 포위 중의 궁지에 빠진 군대의 사기를 일으키려고 꿈에 본 계시에 의해 성내에서 롱기누스의 창이라는 "성창(聖槍)"의 유물을 발견했다고 했으며 그에 힘입어 일단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후에 신망을 잃어버린 그는 이 성창의 위조로 의심을 받던 차 시죄법을 자청하여 받다가 화상을 입고 사망하였다고 하는데, 이 삐에르는 은자 삐에르와는 다른 사람이란 말도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성창의 벽화(Fra Angelico, 1440년경)

 

 

 

 

 

 

Posted by Alcibi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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