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탈고하고 나서 발표한 <좌와 벌>. 라스콜니코프가 인간버러지를 스스로 심판한 범죄는 지금 한국 법정에서는 몇년 형이나 나올까. 자수 여부와 상관없이, 요즘 희한한 살인범죄 판결을 보면 적당히 변명하기만 하면 무기징역은 커녕 한 20년 정도라는 것 같다. 소설에서 희한하게 생각된 것은 수사당국이 여러가지 첩보채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라스콜니코프를 잡아들이지 않는다. 확증이 불충분하다 혹은 자수하도록 권한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전제군주제 정부의 관리들이라서 그런지 중범을 저지른 범죄자가 있으면 민생을 위해서라도 재깍 잡아들이는 것이 도리일 텐데 뜸드리면서 은근 범죄자를 훈시하는데만 열중하는 게 영 거슬린다. 라스콜니코프 입장에서는 자비로 느껴지기 보다도 더 모욕감을 느낄 그런 것 말이다. 우리나라 꼴만 보아도 어이없는 판결을 남발하는 판사들이 범죄자들만 만나면 훈시한답시고 반말하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자기들의 공직생활도 떳떳하지가 못하다. 그래서 라스콜니코프의 사상과 행동을 꿰뚫어보는 듯한 수사당국의 태도는 왠지 전제정부의 오만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렇고 <죄와 벌>의 에필로그 부분은 정말 그렇다. 아래는 그 마지막 부분이다.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그는 몰랐다. 그러나, 곧 뭔가가 그를  낚아 그녀의 발밑으로 던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무릎에 팔을 던져 울었다. 그녀가 끔찍하게 전율하여 창백함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일어나 그가 떠는 것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녀는 이해하게 되었고 무한한 행복의 빛이 들어왔다. 그가 그 무엇보다도 그녀를 사랑하며 마침내 그 순간이 왔음을 알게 되었다.  . . .

그들은 말하고 실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눈물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둘은 모두 창백하고 여위었다. 하지만 병약한 얼굴이 새로운 미래의 여명과 충만한 재생으로 밝혀졌다. 사랑에 의해 갱생되었던 것이다. 서로의 마음으로 무한한 생명의 원천을 얻었다.

기다리고 인내하기로 그들은 결심했다. 7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 얼마나 그들 앞에 놓인 끔찍한 고난이며 무한한 행복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 전심으로 이를 알고 느꼈다. 그녀는 오직 그의 인생 속에서만 산다.

저녁녘 문이 잠기면 라스콜니코프는 판자침대에 누워 그녀를 생각했다. 그의 적이었던 모든 죄수들이 그를 다르게 보는 날을 상상하곤 했었다. 거기서 그는 그들과도 이야기 나누고 그들도 그를 친하게 대했다.  이제 그는 그런 것을 기억하게 되었고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젠 모든 것은 변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그는 예전에 그녀를 끊임없이 괴로히고 마음에 상처를 냈다. 창백하고 여린 그녀의 얼굴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기억도 그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이젠 그녀의 모든 수고를 되갚아준 무한한 사랑으로 그는 안다. 과거의 모든 아픔이여! 모든 것이, 그의 죄, 심판, 수감 모두가 이제는 그에게 그와 무관한 외적이며 낯선 사실로 느껴졌고 의식적으로 무엇도 분석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단지 느끼기만 했다. 삶이 이론이 있던 곳에 걸어왔고, 뭔가 많이 다른 일이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그의 베개밑엔 신약성서가 있다. 기계적으로 그것을 펼쳐들었다. 소냐의 것이다. 라자로의 회생을 그에게 읽혀주던 책이다. 처음으로 그녀가 종교문제로 그를 걱정할까 복음을 이야기 하며 책으로 그를 귀찮게 굴까 걱정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그 주제로 다가오는 일은 한번도 없었고 그에게 성서를 준 일도 없다. 병에서 낮고 오래지 않아 그녀에게 그것을 요구했을 때 말없이 그 책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이제껏 펴본적이 없다.  

지금도 펴지 않았지만 한가지 생각이 스치었다.

"그녀의 믿음이 이제 나의 것일 수 있을까? 그녀의 감정 적어도 열망이라도 . . ."

그녀 역시 그달 많이 흥분되었고 밤엔 다시 아팠다. 그러나 행복하고 너무나 뜻밖의 행복을 느껴 그 행복에 불안해졌을 정도다. 칠년이다. 겨우 칠년. 둘이 모두 칠일처럼 볼 준비가 된 행복이 시작될 찰나. 이 새로운 생이 공짜로 그에게 주어지지 않으며 값비싼 댓가를 치르게 하며 엄청난 분투와 고통을 치르게 할 것임을 그는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한 인간의 점진적 갱생의 이야기이자 그의 재생과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이야기 미지의 새로운 삶에의 입문이다. 그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되겠지만 우리의 지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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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cibi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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