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해서 읽어야 했던 책 중에 루쉰(노신魯迅)의 <아Q정전>이란 것이 있다. 당시 한국 사회 구석구석 남아 다소의 권위를 음양으로 누리던 동양의 것은 모두 미신이나 퇴보적으로 보던 때에는 루쉰의 생각 자체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다만, 나이가 들 수록 이 소설이 과연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감을 많이 갖는다. 우선 동양문화를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기 전에,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부친의 병환을 이용해 집안의 가산을 털어먹은 비과학적 중국의사에 대한 작가의 심정은 이해가 가고 남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 비판이나 구도덕과의 단절 보다는 그 중에서도 뭐가 옳은 것이고 뭐가 틀린 것이며 틀렸으면 어떻게 어떤 이유로 틀렸는지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분별력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구도덕이란 지금도 물론 이려니와 당시에는 더더욱이나 공존해 온 것으로, 현재적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현대에서도 공존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현실적 해법을 생산해 낼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이 없다.

 

문학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주제는 내가 아니지만, 루쉰이 그의 "아큐"를 대하는 태도는 후대의 홍위병의 행태 이상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실 동양의 고전의 대부분을 형성해왔던 중국문화라는 것이 단 한 사람의 문학가에 의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데 대해 회의하게 된다. 다만, 성급하게 앞서나가는 서구사회를 따라잡으려 했던 절박한 심정만은 이해가 간다. 아무리 세상이 뒤집어 졌어도 또한 일개 백화의 작가가 사마천 같은 역사의 아버지 보다 높이 평가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코미디 중에 상코미디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서구인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 때문으로 루쉰이 수천년 역사를 통해 옥석이 가려진 전통적 대가들 이상으로 떠받들어지는 게 과연 제대로된 자리매김일 지 의심이 든다.

 

내가 더 어릴 때 읽었던 루쉰의 위인전엔 그가 친구와 하는 문답이 실혀 있었는데 절대로 부숴지지 않을 무쇠로 된 강철감옥에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과거의 나도 사회에 대한 조급한 변화의 바램을 가졌었고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이 책을 찾게 되었다. 낙후한 사회에 대해 째찍질이라도 해서 급하게 바꾸고 싶다는 작가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때로는 그런 째찍질이 더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없고 세상이 훨씬 복잡한 제약 속에 있다면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대한 비판 중엔, 다소 유치한 수준의 계몽주의적 감상의 발로라는 말도 있다.

 

 

 

 

'소설과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찰스 디킨즈 <크리스마스 캐럴>  (0) 2014.04.16
송시현의 <꿈결 같은 세상>  (0) 2014.04.16
벚꽃 엔딩  (0) 2014.04.13
최인호 <불새> 1987년 우석 중판  (0) 2014.03.14
최인호 <불새> 초판본 표지  (0) 2014.03.12
Posted by Alcibiad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