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월호 참사 때문에 나라 안이 어수선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고 회사와 정부에 온통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이 아니라면 내 가족이 죽을 일이 없었고 구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원망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일본 소설 중에 여러 차례 드라마화되기도 한 <빙점>이 있는데 세월호 사고를 보고 집어들었던 것이 바로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의 빙점이었다.
여기서도 해난사고가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아내의 부정과 소홀함으로 인해 그들의 첫 딸을 잃었다는 생각에 치를 떨던 쓰지구치 병원 원장 게이조는 이 사고를 통해 거듭나고자 한다. 이 사고는 도오야마루(洞爺丸) 사고라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구명조끼를 양보했다던 선교사 스톤의 이야기는 사실인 것 같다. 바로 선교사가 남긴 화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게이조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갈등하게 한다. 사고는 1100명 이상이 죽고 겨우 150명이 살아난 대형 해난사고였고 게이조는 살아 돌아왔다.
게이조는 자신의 3살 딸이 유괴 살해된 후 아내 나쓰에에게 남은 키스 자국을 보았다. 밀회를 위해 아이가 방치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나쓰에는 어디까지나 선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게이조는 자신을 그럴 듯한 이유로 변명하고 포장하지만 악한이었다. 그는 시치미를 떼고는 언젠가는 아내에게 고통을 줄 작정으로 자살한 유괴범의 딸을 입양해 나쓰에게 기르게 하고 나중에는 나쓰에의 입양된 요코에 대한 학대를 방치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양보한 성인(聖人)의 삶과 이런 저런 애증에 얽매여 사는 범인(凡人)의 삶이 대비된다. 내가 아직 정확하게 그 메세지를 헤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극 중에서 요코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한다. 요즘에는 아동학대나 아동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은 것이 다행이다.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면 과연 우리가 도망간 선장이나 무책임한 회사 잘못된 해경 등 정부당국을 과연 용서해야 하여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것에 대한 용서여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용서도 용서지만 우선 사고원인 조사나 책임자들의 직무유기 규정준수나 불법탈법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확실한 재발방지책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먼저임은 다시 물을 여지가 없다. 지금 조문소를 가득 메운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희생자들에 대한 범국민적 사랑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제도보완을 통해 국민적 안전이 이 사건을 계기로 담보되어야 한다.
<1954년 태풍에 침몰한 토오야마루 호>
일본 작가들의 좀 이르게 발전된 세련된 서사방식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통속소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이 소설이 과연 비평판 세계문학에서 다룰 만한 것이었는지는 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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