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의 교훈을 남기었던 원효의 고사 처럼 무엇이든 과거에는 훌륭하고 좋다고 생각되었다는 것이 깨달음을 얻고서는 그렇지 않고 도리어 역겨울 만큼 추하게 보이는 일은 흔하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아니라, 판형이나 여러 형식적인 변화의 결과 그 감동이 완전히 역전되는 그러한 경우가 있다.

 

가령 최인호의 소설에서 원래의 세로쓰기 문고판형의 것으로 읽는 <불새>는 긴박감이 느껴지는데 이게 가로쓰기의 깨알같은 문자의 나중에 나온 판으로 보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우선 문장이 짧은 것 부터가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데 세로쓰기로는 세련된 느낌이었던 것이 가로쓰기에서는 유치한 느낌으로 변한다.

 

이건 의미를 담기 보다는 적당한 느낌을 전달하는 경우 있을 수 있는데 그 느낌이 책의 모양에 좌우된다는게 많이 아쉽다.

 

최인호의 소설이야 재미로 보는 통속소설이라 그렇다 치고 어떤 영향력 있는 작가에게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때가 더 어이없다. 재미로 보는 최인호 소설이야 느낌이 느낌으로 화하는 정도라지만, 어떤 본격소설가의 작품은 세로쓰기에 국한혼용일 때는 고매한 사상을 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다가 이게 가로쓰기로 바뀌는 순간 최인호 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전달한다. 고매한 사상이 담긴 것 처럼 보였던 종이뭉치는 가로쓰기 전환 하나에 치졸한 사상을 담은 최인호류와의 동격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성형수술의 후유증이 밝은 조명에 드러나듯 거짓으로 고매한 사상을 꾸미던 허위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라 말하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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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cibi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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