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 속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야기를 이제 한 번 조금이나마 밝혀 볼까 해. 사실은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 이것 또한 소설과 똑같은 일이지만 별로 공개하고 싶지는 않군. 하지만, 그 때의 담임선생은 날 위해 작은 배려를 해주었지. 예를 들어 내 옆에 싸움잘하면서 문제의 인물과 적대적인 녀석과 같은 자리에 친하게 지내게 해주셨지. (뭐 결코 작지 않은 배려였지.) 그래서 난 고생은 몰르고 살았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되니까 동급생에 비해 덩치나 키가 커 보이며 끼리끼리만 노는 세명 들어오는데 아이들이 사이에선 쟤들 무슨무슨 "파"래 이런 소문이 파다해. 인상도 다 하나같이 더러운 얘들인데, 한 놈은 구면이라면 구면이고 다른 한 놈은 처음 보는 "프랑켄슈타인" 형의 인상을 가진 녀석이었는데 나중에 싸움못한다고 그냥 당시 말로 "삐리"라 불리게 되었다. 한 녀석은 지금도 수상쩍은 놈이야. 녀석은 나의 약점 하나를 잡아서 나도 이런데서라도 폭로하기가 약간 망설여 지긴 하는데 이제 시간이 지날 만큼 지났으니 한 번 고백해 볼까해.
첫 날 그 놈을 만났던 건 학년 첫날 자리 정하러 키를 대보려는 데 불량하게 머리 살짝 물들-당시는 불량함의 표지였지-인 녀석이 나를 보고 씩 웃데. 그래 그 주제에 내게 호감이 있나고 생각해서 괴롭힘을 당하진 않겠다고 안심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나봐. 그 웃음에 의미는 지금 생각하면 '니가 ○○란 얘냐. 넌 이제 내 밥이다' 뭐 이런 뜻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볼 때 이 놈은 1인자는 아니었고 1진 중에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스타일이라고 보여, 싸움도 잘 하는 편이었어. 나도 후에 싸움에 대해서는 좀 알게 된 이후로 생각하기엔, 이 셋 중에 나머지 두 녀석은 싸움에 대해 전혀 무지한 녀석이라고 봐도 되는데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도 1진 되기 전에는 잘했다고 하더군. 아무튼 영리한 놈이었어. 그 당시도 1진에 낄려면 주먹만으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반에서 권력을 휘어잡는 거고 그렇게 아이들 주머니건 뭐건 돈을 긁어모아 인생을 즐기는 거였지. 사실 그 속사정을 내가 어찌 알겠냐만은, 그리 짐작된다.
내가 오늘 살짝 공개하고 싶은 어이없는 일화 하나는 학기 초 담임의 배려로 이 녀석이 말하자면 폐품부장이 되었을 때 일이야. 첫 폐품 걷을 땐가봐. 폐품 중에 쓸만한 (꽤 고급스럽고 야한) 패션잡지가 하나 있어서 몰래 집어다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지. 아닌게 아니라 그런 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고 나는 별 죄의식이나 이런 것 전혀 없이 그 생각해 두었던 걸 몰래 내 자리에 가져다 놓았지. 쉬는 시간에 틈틈히 보려고. 그 때는 다른 녀석들 처럼 그걸 한 번 보고 제 자리에 돌려놀 생각이었지. 그래서 별로 대수로운 잘못이 아니라고 아니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헌데, 옆에 있던 놈이 일렀던지 아니면 지가 직접 봤던지 대번에 내 이름을 부르고는 저한테 오라고 불렀던가.
아무튼 그렇게 이 불량한 녀석과 대면을 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날 보면 유쾌하다는 듯 웃고 그랬던 놈이 태도가 확 달라져서 대뜸,
"너 폐품 중에 뭐 훔쳤지?"
이래 묻더군. 나는 순간 별일 아닌 것 가지고 유난 떤다 싶어서 태연히 웃으며 아니라고 부인했어. 어차피 책상이나 책가방 뒤져보면 나올 일이고 나오면 가져가면 되지 "폐품부장"이랍시고 더럽게 치사하게 군다 싶어서 그랬던가. 속으론 "그 깟 폐품 좀 잠깐 가져다 보는데 치사한 놈이네. 가져가라. 이 새끼야"하고 있는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장난 처럼 손바닥을 펴 날처럼 세워서 옆구리를 찌르던데. 맞을 때는 장난으로 친 줄 알았는데 제대로 요령있게 쳤나봐. 어찌나 아픈 지 허리가 다 저절로 수그러지더군. 엄살 절대 아니고 "아"하는 비명이 나도 모르게 입으로 새어 나오데. "누가 폐품 잡아먹냐. 잠깐 집어다 볼려고 그러는데 왜 유난이냐"고 따지려는데 입 밖으로 말이 더는 안 나와. 어쨌든 나는 분명히 보고 나서 가져다 두려했는데 이상하게 그 잡지가 한 동안 우리 집에 있게 되었던 걸로 기억해. 쉬는 시간에 보다 들키면 사형인데 집에 가져와서 볼 밖에 더 있을까? 아 정말 제우스에 맹세코, 폐품 따위를 집에 가져온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물론, 난 여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어때, 이만하면 극도로 무질서한 1950년대의 엄석대 만은 아니라도 그 시대의 엄석대 쯤은 되지 않나.
사태가 심상치 않음에도 그 동안 곱게만 자라온 나는 왕자병에 깨지 못하고 '무엄하게도 내게 이런 짓을 하다니. 이번엔 나도 잘못이 있어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도 이러는지 한 번 보자'라고 분을 삭이지 못해했었다. 이 가소로운 어릿광대가 바로 나 였다니 새삼 지금도 그 소년이 불쌍해져 눈물이 고인다. 하지만, 그게 군기잡기의 시작이었는 걸 그 학년이 끝나갈 때까지도 나는 이 녀석들이 뭣을 하려는지 도무지 감을 못잡았으니.
덧붙여 담임선생의 행동은 그 결정상 경솔하고 태만한 면이 있었어. 하지만, 그는 그의 결정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을 거야. 어떤 면에서 나는 녀석이 무서워서라도 그걸 집어들어서는 안되었고 그런 면에서는 힘 좀 쓴다는 그가 적임자일 수도 있었지. 하지만, 녀석도 폐품지기하는 일엔 별 관심없었으니 그래봐야 고양이한테 생선가게 맡기는 격인데 뭐하러 그랬을까?
이건 이 녀석과 있었던 일 들 중엔 소소한 일인 편이라 늦으나마 이렇게 고해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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