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평균수명이 전에 없이 연장된 가운데서도 참 안타까운 사람이 일찍 간다 싶은 소식으로 충격을 받는 일이 많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유명인의 자살이나 혹은 갑작스런 죽음이다. 최인호 씨의 경우 침샘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암에 대한 치료기술이 옛날과 달라진 지금, 그것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것에 많은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문사 등을 중심으로 한 동안 '잊혀진 사람'이었던 그의 사진이 크게 떳다. 사망 기사였다. 2013년 9월 25일의 일로, 향년 68세었다고 한다. 왕년에 청년문화를 이끌던 "청년작가"라 불렸던 이름이 무색하게 동년배 작가들에 비해 유난히 이르고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나 골치 아픈 '고상한 문학'에는 그리 깊이 빠지고 싶어하지 않는 나의 눈에 최인호 작가는 적어도 한국문단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많은 유명작가들 문인들 평론가들이 있었지만 과연 대중이 읽어줄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몇 떠오르지만 그 중에 글쓰는 재능만으로 최인호를 당할 사람은 없다. 비록 어떤 사람은 비호감전략이란 것과 학벌이나 각종 미디어와 문단의 배려(?) 등 문학 외적인 정치(?)아닌 정치를 수단으로 더 이상 청춘작가로 어필할 수 없는 나이에 접어 든 그를 상대로 승리를 하는 것은 봐왔다. 일찌감찌 대중문학 통속문학으로 전향했다는 평가마저 받은 최인호에 비해 그들도 그들 나름의 순수문학인으로서의 미덕은 간직했더라도 대중적 글쓰기에서 만큼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작가 최인호는 한국 대중문화 나아가 대중예술의 '총아'였으며 그를 위한 한국어의 사용에 관한 한 제일인자였다. 그는 아무리 고리타분한 주제로 글을 쓰더라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희한한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장례에는 문인뿐 아니라 대중가요계와 영화계 등에서 연예인들이 다수 찾아와 생전에 함께 어울렸던 일들을 회상할 정도로, 생전 그가 대중문화 전반에 남긴 큰 영향을 짐작케 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움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은 아마도 현재 그를 대신할 인물도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열 인물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인호의 "부음"에 '한 시대가 저물고 다음 시대는 안 보이고'란 평 만큼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할 다른 말은 없을 것이다.
과연 최인호와 그 동년배 작가들을 뛰어남을 후속 세대 작가들이 있을까? 없다.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단언한다. 그 이유는 전두환 독재이래로 계속되었던 우민화정책이 본격적으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386세대부터도 그러한 문예면에서의 저조함은 나타났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 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은 박태환이나 김연아 같은 대개 운동선수거나 한류 연예인들 뿐이다. 신체적인 능력을 보이거나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외의 정신적 노동으로 얻어낼 성취를 후속세대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국인 것이다.
참으로 최인호의 죽음은 그래서 최인호 만의 혹은 한 개인의 최후만이 아니라 다른 의미의 최후라는 면을 담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인종차별적으로 비난 받을 시대착오적 발언이 되어버렸지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무슨 무슨 가요제 운동대회에 시상식을 휩쓸이 하는 흑인들을 보면서 "깜둥이들은 머리로 하는 일은 하나도 못하면서 무슨 노래나 운동 같은 건 잘 한덴다"라는 조롱이었다. 그 당시는 그런 말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물론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이후로 백인 주류사회에 배척된 채 여전히 대다수가 각종 음양의 차별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인데 지금의 한국인들은 어찌하여 이런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나는 바로 그것이 전두환 정권이래 아직까지 그치지 않는 우민화와 3S정책의 영향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필화사건의 주인공이기 까지 했던 동시대 문학계 인사라도 볼 수 있는 마광수 교수는 3S가 자연스런 신세대의 욕구고 그 욕구의 충족만이 이 나라를 구원할 듯 설쳤지만 실은 그것이 이 나라 문화계를 초토화 시킨 원흉인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가벼운 통속성에 관해서라면 최인호 자신에게 조차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심지어 그는 대중소설로 비난받는 글을 쓰던 시절에 대해, 딸에게 줄 피아노를 사주기로 한 결심에 따라 치열하게 글을 썼노라고 고백한 바가 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문예계의 저조함은 그 역할을 맡아야할 문학계 구성원들에 대한 비난에 관해서는 그 과정과 원인을 놓고 보면 이해할 만한 것이다. 지금 한국의 현 풍속과 세태를 보면 그것은 어찌 보면 사필귀정의 당연지사라 할 것이다. 다만, 두려운 것은 지금 각종 운동대회를 휩쓰는 한국인의 국위선양 뒤에 과거의 흑인이 받았던 조롱을 지금 우리가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 쯤 생각해보고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볼 시간이 아닌가 한다. 비록 인종적 편견에서 우리가 저런 말을 했을 지언정, 18세기의 대표적인 문화인이자 역사가였던 어떤 인물마저 당대의 편견에 물들었던 것이지만, 수십세기를 통해 문명을 가지지 못했던 흑인과 타타르계의 몽골인들은 선천적으로 아둔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자들임을 단언했던 일도 있던 것으로 보면, 해외인들 일반이 한국인을 어떻게 볼까 심히 두려울 따름이다. 아니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런 저조함은 스스로가 알아서 개선해 나가야 마땅한 일이다.
일단 이렇게 까지 황폐해진 한국문화계(한류란 문화산업이 번창했다고는 한다만 그것도 얼마나 실속있는 일인진 모른다)에 대한 반성과 회복의 방도에 대해서는 나는 충분히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풍조가 다소나마 균형을 조속히 회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서는 다만 한 독자로서 한 시대와 좋아하던 한 작가 마감을 추모하는 글들을 본 블로그에 올려볼 것을 당분간의 계획으로 삼고자 한다. 우선, 내 개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자를 짧게 나마 직접 볼 수 있었떤 한 유명서점의 저자사인회에서 받은 저자의 서명과 짧은 인사를 아래에 올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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