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 최인호 작가를 본 적이 있다.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한 대형서점에 들렀다 신간기념사인회의 자리에서 였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마침 이 자리에서 작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아주 짧은 만남을 소개할까 한다.
그 당시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어서 서점에 자주 들르는 편이었다. 책에서 너 높은 차원의 인생의 해답을 얻기를 갈망했다. 어느 한 켠에서 사람들이 웅성대기에 돌아보니 최인호 작가가 있었다. 그가 소설가인것을 알았지만 그 보다는 영화 드라마 작가나 역사로망의 방송작가로 오히려 호감을 가지고 있었었다.
신기하고 이런 인연이 있다 싶어 별로 사고 싶지 않던 책 한 권을 사들었다. 신간은 출판사를 바꾸어 찍은 다섯 권 짜리 시리즈물이었는데 내게 갑작스레 사게 될 책에 전권을 다 살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 당시에도 달리 사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줄서 기다리는 이들 중 전권세트를 집어 든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고민 끝에 그 중에 첫권 만을 집어들고 행사장 요원에게 미리 내 이름을 알렸다. 줄을 서서 저자의 사인을 받기를 기다리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유명작가를 직접보고 사인을 받게 되어 아주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작가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과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도 고맙게만 생각해 줄 줄 알았는데, 선생은 좀 짓궂은 데가 있는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때나 듣던 놀림을 선생에게서 받게 될 줄이야. 서명 받을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요원에게서 건내 받아듣는 순간, 내 이름은 성만 빼면 한 희극인의 이름과 같았는데 선생은 굳이 성마저 바꾸면서 아무개 아니냐며 나를 자꾸 놀리었다. 여러 번 그러는 것이 솔직히 듣기 싫을 정도까지 되었는데 내가 참다 참다 그런 내색을 했을 정도였을까? 그 때서야 선생이 서명을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 책 뒤에 작가와 같이 일본 여행을 할 수 있는 응모권이 있는데 많이는 응모할 사람은 없을거니까 일단 보내면 거의 될 거예요. 그러니, 꼭 한 번 응모해 보세요.'
나는 알겠다며 감사를 표하며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이 것이 그와 직접 대면한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물론 나는 여행이벤트에 엽서를 붙여 응모를 했다. 작가와 일본 내 고대한국과 관련된 유적을 답사하는 것으로 경비를 주최측에서 부담하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여러 사정 상 당시 당첨된다 하더라도 나야말로 그 때에는 외국여행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당첨되면 부모님이라도 보내드리면 되겠다 싶어 응모는 했는데 당첨자 명단에는 내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출판사로 부터 집으로 등기가 왔다. 같은 출판사에서 그 년초에 출간한 신작 <해신(海神)> 전권이었다. 조금 뒤에는 한류드라마로도 유명해 진 그 원작이다. 일본방문단의 규모도 백명 이상 단위였는데 이래서 출판사 장사가 될까고 의아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드라마화되었다니 최인호 선생은 역시 드물게 복이 많은 작가이기는 했다. 문단에서는 비주류였을지 모르지만 대중문화나 미디어 쪽에서는 그의 작품은 언제나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받은 책은 한 번 읽은 후 내 장서 목록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딱히 선생의 작품 중에 흥미있게 쓴 글이 아니라 뒤로 갈 수록 지루했지만 읽긴 다 읽었다. 지금은 책이 많고 우선 순위에 밀려 책꽂이에 꽂아 두고 있진 못하지만 말이다.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인데 아래에 사진을 올려본다. (행사에서 받은 서명과 간단한 메시지가 적힌 것은 맨 처음 글에 첨부함)
이것이 선생과의 그 인연의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그 후 딱 10년이 되려고 할 시점에 그만 이런 슬픈 소식을 듣게 되니 세상 일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한가지 선생의 모습을 직접 보았을 때 놀란 것은 생각보다 건강이 안 좋은지 얼굴빛이 촌노인 보다도 검은 빛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그 전에도 교통사고를 당했다거나 당뇨에 걸렸다가 완치되어 신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후에 읽었는데 그런 탓이었을까? 당뇨가 치료된 기적을 기뻐했던 것이 그 때 쯤이었는데 이 번에는 더 큰 병화(病禍)가 찾아올 줄이야. 신은 왜 한 창 더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것도 유난히도 재능이 많은 사람만 골라가면 이런 재앙을 내리는지 알 수가 없다.
삼가 작가의 명복을 빌며 고인에 대한 나의 짧은 인연에 대한 소개의 글을 마친다.
2014년 2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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