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어떤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이런 말이 있다.

 

"누구누구는 그가 어디에 있든 아무아무이다"

 

누군가를 칭찬하다가 딱히 당장 그 훌륭한 점을 집어내기가 어려울 때 임시변통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지금 러시아 국기를 달고 소치올림픽 3관왕에 오른 빅토르 안 같은 이에게 쓸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안현수! 그는 그가 어디있어라도 과연 한국인이다."

혹은

"빅토르 안! 그가 어디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그는 한국인 안현수다."

 

이런 식의 수식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식의 수사는 고대 그리스의 철인(哲人)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란 책 첫 장에 이미 소개되는 당대의 유명한 견해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인은 그가 포로로 잡히더라도 노예가 아니라고 하지만 야만인의 경우는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그들은 당초 우리가 말한 자연적 노예의 원리를 단순히 추구할 뿐이 된다. 이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모든 곳에서 노예인 자들과 어느 곳에서도 노예일 수 없는 자들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원리를 귀족(고귀한 자)에게도 적용한다. 그리스에서 귀족은 어디에서나 귀족이지만 야만인 사이의 귀족은 자기 나라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는 고귀함과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각기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예제를 다소 옹호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용하는 견해 중에 그리스적 민족주의와 결합되었을 때의 한 예가 된다. 그 때에 그 주장은 요약하면,

 

그리스인은 그가 어디에 있든 본질적으로 그리스인이며 지배자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러시아로 귀화해 러시아인이 되어버린 빅토르에게는 적용하기가 매우 꺼려지는 말이 바로 이 격언이 아닐까 한다.

 

안현수는 과연 그가 어디에 있어도 안현수다.

 

빅토르 안은 과연 그가 어디에 있어도 빅토르 안이다.

 

하긴, 그리스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 유산에 대해서는 적절한 평가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지나치게 오만하다 할 수 있으며 최초 등장할 때 부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배타적 민족주의적인 면이 엿보이는 말이다. 그리고 이 것이 실제 어떤 일을 한 사람에게 바쳐지는 찬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이런 말을 상습적으로 떠드는 사람은 대개 지적 허영에 빠진 속물일 때가 많고 아첨은 하고 싶은데 우물쭈물 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할 때 얼버무릴 때 쓰는 수가 많기는 하다.

 

또한, 지금의 빅토르 안의 성취에 쓰고 싶은 말이면서도 또한 실제론 현상황 때문에 사용하기 껄끄러운 말이다. 그래서 당분간 유보해 두고 쓰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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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cibi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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