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따라 부르는 소치 시상대의 빅토르 안

 

최근 러시아의 빅토르 안 선수를 내쫓은 빙상협회의 태도가 대한민국에서 빙상협회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전국민적인 분노의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천재 스케이트 선수 빅토르 안은 빙상연맹의 나눠먹기와 파벌의 희생양이라고 한다. 비단 스케이트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많은 분야에 그와 같은 권력과 파벌이 존재한다고 우리는 안다. 천재 작가 최인호 역시 자신의 말로는 빙상연맹에 해당하는 문단권력과 패거리들과 싸워왔다고 말한다. 과연 둘 중의 누가 더 큰 싸움을 해왔을까?

 

최인호의 장편 중에 비교적 통속적인 면이 없는 본격소설이라 할만한 것으로 잘 알려진 것이 <지구인>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초판본에 붙인 설명에서 그는 그 소설을 그들에 대한 "카운터 펀치"라고 규정했다. 최인호와 소위 문단의 싸움은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그들이 그를 통속 혹은 퇴폐의 작가로 규정하면서 시작된 듯 싶다.

 

 

소설 <지구인>의 초판 단행본 표지

 

 

나 역시 최인호가 외도를 걸었다는 데 대해서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그의 소설은 퇴폐의 여부야 별도로 하고 사회비판의 메시지가 약하고 현실의 도피 내지 일탈을 그린 것이 많다. 단 하나의 예외가 바로 이 <지구인>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 지구인이 나왔을 때 최인호는 당시 이례적으로 공안기관으로 끌려가 모종의 압력을 받아야 했다고 고백한다. [각주:1] 그것 때문일지 모르지만, 그 이후의 장년의 최인호는 역사소설로 또다른 도피해 거의 남은 생을 거의 그에 쏟아 부었다.

 

이는 겉은 화려한 대작가의 창작활동 조차 어두운 시대의 공권력의 검열 등의 제약을 받았다는 대한민국 역사상의 한 치부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 활동이 그런 검열에 제약받은 정도가 어느 정도였을까 하는 것은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나는 어쩌면 그가 통속작가라고 비난받는 길을 걸은 것도 그런 시대적 제약이 그 선택에 영향을 끼지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한다.

 

오히려, <지구인> 이후 민주화된 이후에도 최인호의 사회고발은 자신의 주종목이라 할 소설을 통해 이야기 되는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역사소설을 다루었으니까. 다만 몇 편의 수필과 아니면 재출간되는 책의 서문에서 슬쩍 암시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바로 문단권력에 대한 것이고 참으로 의미심장한 최인호에 있어서 최고의 사회고발이 역설적으로 바로 그것을 통해 수행된다.

 

아마도 시작은 1994년 <별들의 고향>의 재출간의 서문이었을까. 여기서 마치 빅토르 안 같은 탁월한 인재가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쥐기 까지 한체대파라는 파벌에 발을 담그지 않을 수 없는 동일할 고통스런 작가의 입문과정 희미하게 암시해 준다. 이 천재작가는 자신이 군대가기 전 쓴 10여 편의 단편원고가 당시 한국 문단 수준에서 모두 탁월한 걸작이라고 보았지만 문단권력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고 전한다. 신춘문예를 통과한 것은 단 1편 그리고 간간히 다른 작품 몇편들,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그들만의 작품집에 글을 싫기가 그리도 힘들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1972년 어쩌면 통속문학으로의 전향의 시기가 된 신문연재 <별들의 고향>의 대히트 후에도 이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겠다는 업자들의 경쟁은 전무했다고 한다.[각주:2] 아무튼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부분은 빅토르 안 사태에서도 보여지듯 나눠먹기 파벌문화로 얼룩진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면에서 참여문학을 표방해 오던 파벌도 한국에선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최인호의 고백에서 드러난다. 그는 아직 순수문학이던 시절 몇몇 유명문예지 지면을 석권할 헛된 야심으로 그와는 지향이 다른 <창작과 비평>의 염무웅의 부탁을 들어주어 한 편의 원고를 그에게 넘겨 주었다. 최인호는 그 때 이후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중편이 하나 있다고 대답한 후 곧 <미개인>을 완성해서 며칠 후 그를 다시 만나 작품을 주었는데 다음호에도 또 다음호에도 내 작품은 실리지 않았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내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연락을 한 후 물었더니 그는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작품의 주제가 약하다는 것이었다. 저항의식이 없으니 뒷부분을 강하게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두들겨 맞고 끝나는 것은 지나친 패배의식이니 이를 좀 강하게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염무웅 씨의 그런 주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창작과 비평>은 소위 참여분학을 주장하고 있었고, <문학과 지성>은 순수문학을 주장하고 있어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작품을 평론가가 감히 이리 고쳐라 저리 고쳐라 하고 주문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입으로 말해 버렸다. 젊은 작가가 그런 말을 하는 데 그로서는 놀라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내가 당장 그 작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그는 두말없이 <창작과 비평>의 편집실로 돌아가 원고를 가져와서 내게 돌려주었다.[각주:3]

 

멀쩡한 원고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참 나이 어린 젊은 작가이기에 이렇다할 말 없이 자기 서랍 케비넷에 수개월 동안 묵혀 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으니 고쳐 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던 것이 바로 검열과 언론자유 탄압으로 군사독재 정권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자기 그룹 문단이란 테두리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했던 또 하나의 검열이자 폭력이었던 것이다. 이런 것은 국민소득이 몇배가 된 지금도 보수나 진보 어느 쪽에도 남은 병폐요, 오늘날 우리의 문화 부진을 낳은 또 다른 원흉이다.

 

아무튼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문단에서 성공하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작품성을 떠나 알아야 할 점이다. 최인호의 소설이 많이 그리는 것 처럼 덮어놓고 현실을 외면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고 될 일은 아니며,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정말 현실에서 성공을 꿈꾼다면 평단의 벽을 넘자면 작품 외에도 알아야 할 점이 적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최인호의 경우가 빅토르의 경우 보다 더 우리사회의 악성이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운동선수에 대한 부정의는 메달 하나 못따는데 그치지만, 최인호의 벽은 사회의 공기와 일종의 생각을 교환하는 매체에 대한 검열이라는 면에서 더 악성인 것이다. 더구나, 스포츠의 경우는 너무나 잘되어서 나눠먹기라도 하는 것이 요즘의 각종 올림픽 수상실적이나 축구나 야구에서의 활약으로 뻔히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문예계를 지금 보면 그나마 작은 규모의 국내시장 마저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유명 작가들에게 점령당하다 시피 하지 않은가.

 

 

 

  1. 1988년 동화출판공사판 서언에도 있다. [본문으로]
  2. 최인호의 초판본은 대개 <예문관> 판이었는데 그 사장 최해운 사장 단 한사람만 그 일에 나서서 7년 독점계약을 했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3. 이 사연은 뒷날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에 다시 실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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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lcibi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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