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영화화된 소설 중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란 것이 있다. 물론 평가는 유보해 두겠다. 성인이 되면 꿈은 크지만 마땅히 깨어났어야 할 공상과 환상의 세계에 머무르며 결정적인 실행력이 없는 영화광 임병석의 일생을 친구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임병석이 그 토록 밑바닥 삶을 전전하면서도 환상에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어릴 적 또래 소년들 사이에서 깨어지지 않는 "다이빙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헐리우드 키드의 삶에서는 아마도 길에서, 보트장에서, 그리고 나룻배에서 모든 사람이 그를 지켜보고 있는 동안 하늘을 날았던 그 순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삶의 한 조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광은 병석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병석이의 전락의 역사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이 것만을 보면 병석이의 문제되는 행동의 동기는 영화 <더팬(The fan)>의 길(Gil)과도 비슷하다. 길은 과거 리틀야구의 유망주로의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다만, 평생 헐리우드의 삶의 꿈을 품고 사는 병석과 달리 길은 오히려 자신의 열정을 단념한채 이제는 야구매니아로 샌프란시스코 자인언츠에 쏟아 붙는다는 것은 다른 점이다. 내 생각인데 아무래도 임병석 보다는 길의 설정이 좀 더 자연스럽다. 병적(病的) 정열을 표출하게 되는데 있어서 그들이 느끼게 된 컴플렉스가 아무래도 크게 작용할 것 같다. 병석이나 길 같은 남의 환심이나 사고 싶은 여린 마음씨의 소유자에겐 기실 남의 차가운 시선이 독이다. 바로 화자(話者)가 친구인 병석을 다루는 시선이 그러한데 작가가 왜 이리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특히 소위 아웃사이더에 대한 존중과 관심과 사랑 그리고 개성 존중을 그렇게도 이야기 하던 시대를 지나온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좋게 봐주면(약간 관점을 비튼다면) 병석은 전형적인 세상에 맞서 자기 세계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는 "영웅"도 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제목 부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맥락이 비슷한 면이 있다. 기껏 영화판에 끼워주었더니 시다바리 생활을 못 버티고 나갔다는 것이나 엄석대가 전학생을 길들이던 것이 그래 보인다.
나중에 병석의 표절에 대한 것도 전혀 어색하다. 한국 사회의 표절 사건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거의 구조적 만성적 문제로 그 자체가 하나의 사업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 자체도 생계나 돈벌이의 연장이지 병석 처럼 허영심에서 표절하는 사람은 비현실적이어 보인다. 다만, 이 어색한 결론에서 "표절"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거의 배설에 가까운 수준으로 병석의 전락과정을 냉소 조롱했던 이유의 일단이 드러나는 것도 같다. 당시 문화계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였으나 작가가 몸담는 문학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을 생각하면 헐리우드나 기타 어설픈 흉내나 내는 한국 문학계(혹은 문화계) 등 기타 등등 작가가 싫어하고 경멸하는 풍조로 인해 그런 걸러지지 않은 듯함을 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안정효 님에게 묻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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