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김민기 곡, 양희은 노래 '상록수'
며칠 전 페이스 북에서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그 글은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시인인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와 한국에서 오랫동안 저항시인(무엇에 저항했는지는 모르지만)으로 불린 김지하의 대표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교한 것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한마디로 김지하의 시가 폴 엘뤼아르의 시를 베낀 것인데 이미 오래전에 '자유'라는 시가 한국에 소개되었고 그 시를 읽은 사람들이 김지하가 그 시를 표절한 것을 알면서 침묵한 것은 표절의 명백한 공범이라는 내용이었다.
문학작품에 관해 이런 것이 표절이 성립하는 지는 내가 잘 모르겠다. 단언할 수 있는 건 패러디라는 것도 그렇고 일부 따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드는데 그렇게 하면 저자가 그런 사실을 다른 방법을 통해 알리는 것이 망신을 피하는 길이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대로 따온 구절도 있지만 새로 덧붙여 놓은 것도 있으니 청출어람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단, 이것이 김지하의 대표작이라면 그것 역시 사기의 일종이라는 것까지는 나도 인정할 수 있다.
또, 폴 엘뤼아르의 "자유"도 시인의 대표작으로 2차대전 중 지어져 영국항공기로 뿌려졌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외국에서 이렇게 널리 알려진 게 한국사람들만 모른다는 이유로 표절이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리다. 모르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사기일 수 있겠다. 한 작가의 대표작이 일종의 패러디(?)라는 것은 뭔가 우스워 보이고, 그가 한국문학의 대표작가라면 솔직히 "국격"에도 손상이 가는 일이다. 문학에 대한 감식안이 없는 일개 독자인 나로 김지하를 기억하는 것은 최인호 작가가 몹시 칭찬하던 시인이라는 것 뿐이다. 또한, 일본 같이, 얄밉고 한편으로 증오스런 노릇이지만, 분명 문화적으로는 한국이 넘볼 수 없는 동양의 대표주자 1인 나라에서 그를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해왔다는 점도 내가 쉽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2 적어도 한 때 한국문화예술인들이 그렇게도 베껴왔던 일본 것은 그가 베끼지 않았다는 증거겠다. 하긴, 주작업이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시였으니 그런 일이 있을 지 모르겠으나, 거의 드물게도 현대적 풍으로 쓴 대표적 하나가 그런 쪽이라니 실망이 되는 건 사실. 앞으로는 이 시에 대해 작가나 소개하는 사람들이나 폴 엘뤼아르의 "자유"도 함께 언급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폴 엘뤼아르도 엘뤼아르지만,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도 비슷하다. 마지막에 도데의 소설에서 하멜 선생은 마지막으로 목이 메인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대신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크게 쓰는 장면이 있다.
문학도 좋고 뭣도 좋지만 우리는 먼저 우리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아직은,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해 마다 노벨문학상 후보 누구누구 하는 이야기가 나오며 한국문학도 덩달아 대단해 진 줄 생각하지만 정말 아직까지는 우리 문학 수준이 이 정도 밖에는 안된다. 아니 수준이라기 보다는 이것은 혼탁함의 척도에 더 가까운데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지 않는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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