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초기 몇 안되는 생각하는 소설 <지구인>은 알고보니 추리소설가로 인식되는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와 같은 시기에 연재되었다. 물론 한쪽은 스포츠지에 한쪽은 문학잡지이다. 소재상 이른 시기 연재를 시작한 <여명> 측은 아직 빨치산 문제를 다룰 단계는 아니었겠지만 김성종의 직전 데뷰작 <최후의 증인>이 바로 빨치산에 얽힌 시대적 비극을 묘사한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추리 혹은 역사소설에 가깝다. 그러니 소재나 거기에 더해 노골성에서 스포츠지에 연재된 <여명> 만은 못하나 노고적이고 추악하기까지 한 성묘사가 폭력묘사 모든 면에서 두 소설은 비교가 될 수 있다. 어떤 식으로건 김성종의 소설이 최인호 소설에 크게 영향을 준 결과가 <지구인>으로 보인다.
소설의 기교에 있어서 방대한 분량의 <여명> 보다는 그보다 압축적인 <지구인>이 조금 더 낫다. 하지만 역사지식 면에서는 최인호가 김성종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물론 김성종에게 부정확하고 또는 왜곡된 면이 없지 않으나 한국현대사를 이 정도 수준으로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는 소설가로서의 최인호의 한게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면에서는 김을 능가하더라도 이 부분은 열세다. 나이 들어 역사소설에서 역사공부에 몰두하면서 최인호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는 소설가로 전환을 시도했고 역사라는 면에서 이런 시도가 제한적으로 성공했지만 두고두고 남은 최인호의 약점은 사회의식이나 사회인식 면에서 다른 작가들의 노력과 성취에 많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같은 것들도 <여명>에서 많은 힌트를 받았을 것 같다. 물론 다분히 흥미위주며 과도한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상업적 어필을 하는 오락적 <여명>에 비해 <태백산맥>은 좀더 진지하다. 최인호의 글 어디선가 5공정권의 모 기관에 끌려갔다 나온 이후 <지구인>과 같은 소설을 쓰지 못하였노라는 암시가 있었던 것을 보면 20세기 한국문학사나 사회사 측면에서 또한 매우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