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아동소설의 숨겨진 좌익코드 특히 <5월의 노래>의 박해받는 노동자를 보고 5월이 메이데이의 달을 말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원래 우리나라 어린이날 자체가 좌익적 영향을 많이 받던 시대 독립운동가들이 제정해서 어린이날까지 한 기간으로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좌우익이 따로 어린이날을 기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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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많이 지났지만 복고캠퍼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단체 과미팅을 앞두고 손호준과 김성균의 대화 중에 "얼씨구 신발도 샀네? 촌놈발에 조던이 왠말이여!"라는 말에 김성균의 답이 걸작이었던 것 같다. 무용학과와 미팅하는 줄로 알고 있는 그는

 

 

 

"내 왠만하면 아무렇게나 하고 갈라했는데, 무용과다 아이가.
내 언제 살면서 또 무용수를 만나 보겠노!"

 

라며 히죽 웃었다. 이 대사만은 공감이 갔다. 뭐랄까 꼭 무용수는 아니더라도 무대조명에 잘 받는 화려한 외모를 갖는 이성에 대한 선망심 같은 것을 항상 가지고 살았었다고나 할까. 김성균은 실은 미팅에서 만난 그녀들이 무용학과가 아니라 무역학과라는데서 꿈에서 깨게되지만 공교롭게도 극중에 그와 맺어지는 인물은 현실 걸그룹 멤버 광의의 무용수라고 할 수 있는 '도희'였다. 그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다.

 

어디서 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그 때는 그저 젊은 나이에 막연히 그런 여자들 한번 사귈 생각을 하는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었지만 한국의 역사나 문학 속에 나타나는 무용수 애인들은 그 당사자들 역시 '한 때 그럴 수도 있지'하고 말려들어간데 비해 너무 많은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있는 말하자면 일대 잔혹사를 연출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변인들의 대학 시절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교양체육 시간에 강사가 속한 여대의 학부생들이 에어로빅 시범을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다고 하는데 '보기만 하고 사귀어 보진 못했다'는 아쉬움이 섞인 김성균 말의 판박이였다. 대학 신입생 때는 꼭 중고등학교 때 놀던 얘들 처럼 굴던 녀석이 문득 학교 여학생 중에 누가 연예계로 나갔다는 말을 듣자 그런 얘랑 데이트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 지갑에서 카드도 훔치겠다는 말을 듣고 내가 대학에 온것이 맞는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옛날엔 여깡패들은 어쩐다 저쩐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면도칼을 씹느니 뱉느니 하는 말이 있었다. 어느 날에는 여깡패들의 춤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들은 아주 특이하게 춘다는 것이다. 김추자식으로 요란하게 춘다던가. 50년대 '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 조폭나와바리 업소에 댄서들은 조폭을 애인으로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김추자의 춤은 모르겠는데 여자들의 율동은 어떤 상황에서는 극히 쇼킹한 면이 있는가 한다. 80년대에 댄스가수 김완선의 관능적 춤이 지상파를 탔을 때도 당시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의 중학시절 경험은 이러했었다. 중2 때인가? 2박3일인가로 극기훈련을 갔었고 당시 학교는 남자반과 여자반이 나뉘어서 서로 볼 일이 없는 체제였었다. 그 당시 춤 하면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브레이크 댄스를 잘 추는 아이들의 인기가 좋았었다. 중1 때에도 한 녀석이 어찌나 잘 추던지 소풍가서 왠만한 연예인하고 똑같은 수준으로 추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 학교에서 쟤 보다 잘 추는 녀석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극기훈련이란 게 군대식 훈련소 비스레 하게 내무반 생활하게 하고 조교들이 군기 잡는 식으로 이루어졌고 장소는 그런 산골 외지에 위치한 곳이었다. 거기 조명이 번쩍이는 제법 그럴 듯한 심야무대가 있어서 제각기 장기자랑을 하는데 그 중에 한 여자반 팀에서 거의 열 명 정도가 춤을 추었다. 보통은 여자얘들의 학내행사 중의 장기자랑을 하는 것을 보면 늘 남자얘들 보다 못했다. 혼자서 춤을 잘 출 수 있는 얘들은 예외없이 남자였다. 여자얘들은 대충 여러 명이서 추는 듯 마는 듯 했었다. 기량으로 보면 한 참 못미쳤고 그 날도 다르지 않았다. 단지, 다른 것은 심야였고 화려한 조명이 있었고 그 여자 아이들이 추는 춤이 뭐랄까 관능적이었다는 것이었다. 무대 조명 때문인지 고작 중학생임에도 굉장히 성숙해 보였다. 나 자신도 놀랐지만 성인이었던 조교들 조차 넋을 잃고 쳐다보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 때 어렴풋이 이게 여깡패들이 춘다는 그 춤인가 싶기도 했었다. 물론 선후 인과관계가 있는 일은 아니지만 대략 이들의 관능적인 춤을 본 때 부터가 내 인생의 내리막이었었다. 공교롭게도.  영화 친구에서도 소녀그룹 <레인보우식스>의 공연을 본 게 파탄의 전조 쯤 되었다.

 

또 현대사를 더듬어 보면 이런 일도 있다. 지금이야 무용수 출신이 북한의 국모(?)가 되는 것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모르겠다. 과거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실물 얼굴도 볼수가 없었다. 민주화가 되고 나서야 그들의 실제 사진이나 영상들이 공개되었는데 그 즈음 한번은 청소년 년령대의 여자들이 부채춤을 출 때 마친 등장한 김정일을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귀순자들을 불러 저 눈물이 진짜인가 가짜인가하는 질문을 하는 프로들이 있었는데, 김만철 씨의 일가 중에 한 사람이 워낙 세뇌가 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로 김정일만 보면 자연스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그 눈물 뚝뚝흘리며 하염없이 김정일을 애모하는 여학생 중에 내 맘에도 꼭들고 남한의 왠만한 정상급 여배우 못지 않은 미모를 가진 이가 있어 몹시 속이 쓰렸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여자의 환심을 사고 싶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외모에 대한 환상과 선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미인계에 당한 적도 있는 것 같다. 미인계가 미모로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거기에 일종의 '신파'적인 요소가 추가되면 금상첨화랄까. 미모에 대해서 남자는 단순히 거래하려 하지만 순진한 남자가 어떤 여자의 눈물을 자기만 아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꼼짝달싹 덫에 걸리는 순간이 된다. 파멸의 순간이란 말이다. 사실 유명한 <공포의 외인구단>의 순정스토리도 결국 마동탁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미인계였다. 대략 초선이는 엄지요, 까치는 여포가 된다. 사실 바로 왕윤이 놓은 비정한 덫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 놓은 것인데 모두 순정스토리만으로 아는 것 그것이야 말로 미인계의 깊은 함정이요 최면효과가 아닐까.

 

어린이로 6.25를 맞은 이의 증언에는 이러한 것이 있다. 가죽 장화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이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데 그 여자에게 반했고 특히 '김일성 장군의 노래'는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 또 북한의 유명한 방소(訪蘇) 예술단이 서울인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위문공연을 한다는 말에 먹는 것도 없는데 예술타령에 기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방소예술단 하면 바로 이명준의 북에서 만들어준 관제애인(官制愛人)의 이름인 '은혜'를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국립극장의 발레리나로 나온다. 그러나, 그건 소설 속의 얘기고 이 부분을 읽다보면 북에서 숙청당한 시인 임화의 말년을 생각하게 된다. 임화 하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숙청의 최종 목표였던 박헌영이다. 박헌영에게는 상당히 세련된 외모의 피아니스트 아내 주세죽이 있었다. 아마 상해시절 공산당활동을 하는 중에 맺어진 것으로 안다. 주세죽 자신은 무용수가 아니었지만 그들 사이의 외동딸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이가 어머니의 예술재능을 이어 부모가 숙청당한 후에도 소련의 발레리나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이 첫 아이가 태어난 직후 두 사람은 헤어졌고 그로인해 이 아이는 소련에서 홀로 자란 것으로 안다. 다시 임화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임화는 카프에 간여한 좌익 시인이면서도 다다이즘에 빠지기도 했고 감상적인 시도 많이 썼다. 후자 중엔 <오빠와 화로> 같은 게 유명하지 않나 싶다. 하여간, 김일성 측에서 박헌영파를 숙청하기 위해 가장 먼저 타겟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임화의 '눈물 짜내는' 감상적인 시였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52년 11월 김일성은 돌연 남로당인사들만 따돌리고 시낭송회를 연다. 여기서 남한에 남은 딸을 그리는 임화의 시가 집중 성토된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싸우는 공화국 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목적으로 눈물과 한숨을 자아내게 하는 시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임화는 김일성 파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그 와중에 회유나 어떤 이유에서 석방된 채 말하자면 연금상태로 있었다. 그 중에 중국으로 간 부인 지하련 대신 한 여자가 관제부인으로 투입되었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그러한 이야기가 있는데 최소한 이명준의 이야기와 임화의 이야기는 서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마치 한쪽이 다른 쪽에서 힌트를 얻어 창작된 것 같다. 아무튼 임화가 연금되면서 그의 남로당파 동료들이 속속들이 잡혀들어와 함께 군사재판소에서 반국가, 반혁명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상이 내가 써보는 소위 무용수잔혹사이다. 되는 말인지 안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도 듣고 생각하는 한에서 무용수에 대해 써 본 것이다. 특히 임화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으나 윤이상의 북한며느리 역시 무용수 출신인데 김일성 주석이 몸소 중매를 섰다는 이야기가 있느니 만큼 대체로 임화의 이야기도 북한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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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가볍게 주인공이 "뒷방살이" 주인공으로 소외된 처지에서 타인의 세계를 흘끔흘끔 쳐다본다는 면에서 막연히 최인훈의 <광장>의 구도와 묘하게도 이원수의 1960년도에 나온 소설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원수의 다른 소설 비교적 초기작이었던 <오월의 노래>라는 소설에서 두 소설이 취하는 구도가 완전히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1960년 <민들레의 노래>의 뒷방살이 주인공

 

한국최고의 소설로까지 꼽히는 <광장>에서 월북한 아버지를 둔 이명준이 아버지 친구의 부잣집에서 '뒷방살이'를 하며 그들의 상류문화를 훔쳐보면서 은근히 나중에는 그 집 딸로 친구의 여동생이기도 한 영미를 겁탈할 생각까지 품는 장면이 있다. 같은 시기 나온 이원수 소설 <민들레의 노래>의 주인공도 정확하게 그러하다. 후자에서, '일가친척도 아니면서 아버지 어머니가 친아들처럼 키우는 현우'는 '정미 역시 친오빠나 동생처럼 생각해 온 현우'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자체에서 <광장>과 같은 구도를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왠지 이명준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어린이 주인공 현우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는 뭔가 공통성이 감지된다. 다만 이원수 소설의 남자어린이 주인공은 부모 특히 아버지가 부재한 환경에서 자라도록 설정된 것이 많다.  

 

이원수의 해방직후 초기작 <오월의 노래>

 

그러면 <광장>의 판박이 구도인 <오월의 노래>는 어떤 소설일까. 이 소설은 광장이 나오기 오래 전에 나온 소설로서는 이원수의 초기작이니 만큼 비슷비슷한 그의 소설의 원형격으로 보인다. 6.25발발직전 1950년에 연재되다 완성은 1953년으로 미루어진 모양이다. 주인공은 역시 먹고살기 바쁜 목수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을 유랑하는 신세로 설상가상 누이까지 돈벌러 떠나면서 혼자 남겨지다가 이사간 마을 학교의 '소년회'에 가입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오월의 노래>의 좌익소설적 면모

 

여러가지로 보면 <오월의 노래>에서 5월은 곧 메이데이를 말하는 것 같다. 여기서는 "노동자"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서 아동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한 장면을 이원수는 어렴풋하게 보여주는데 이 노동자가 실컷 얻어맞고 순사에게 넘겨져 끌려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동소설이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거의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일본 사람 화단에서 꽃을 꺾다가 도둑으로 몰려 새총 혹은 공기총을 맞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도 보통은 무심히 지나칠 수 있지만 노동운동이나 좌익정치운동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발포사건을 묘하게 상징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만세운동이나 독립운동에서도 벌어지기도 해서 반드시 좌익적이라 할 수는 없으나 앞에서 노동자가 매맞는 장면을 보여준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어린이들 세계를 의식 확연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좌익적인 코드들을 꼼꼼히 숨겨노았다고 할 수가 있다.

 

왜 <광장>과 <오월의 노래>는 비슷한 구도인가

 

<오월의 노래>에서 외톨이 소년은 잠시 학교의 소년회에 가입해 동료 소년들의 환대 속에 외로움을 달랜다. 물론 일제 당시에는 조직규율이 강한 좌익계 소년회도 있었고 여러 맥락을 보면 이 여기 나온 소년회 모델은 좌익계라고 보여진다. "위원장"이란 단어 등을 보면 이것도 좌익계 용어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사실은 좌익계건 우익계건 그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더 중요한 것은 좌건 우건 어떤 집단에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경계적인 인물이 잠시 그가 동조하여 속했던 사회로 부터 추방당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광장>이 취하고 있는 구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압권은 어리숙한 외톨이 소년 앞에서 소년회의 핵심성원인 것으로 보이는 한 동료 어린이가 던진 다음과 같은 질책이다.

 

"너 어린 게 우리 소년회의 비밀을 학교에 알리고...... 그래선 못써."

 

말하자면 이 장면만 놓고 보자면 주인공은 소년회에서 베테랑 고참 회원에게 질책 받고 (배신자로 몰려) 회에서 추방당하기 일보직전인 것이다. 그러나, 순진한 소년은 왜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도 변명하지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다.

나는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결말이 바로 이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명준이 남에서는 빨갱이라 형사들에게 욕먹고 북에서는 간부들에게 비웃음 반의 추궁을 당하는 장면과도 같다. 이명준은 광장이니 뭐니 거창하게 떠들지만 그러한 상황을 못견뎌서 결국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원수는 여기서 아마 소년소설인 점을 의식해서 원만한 타협으로 끝을 맺게 한다. 오해가 풀려서 선생님의 지시로 질책을 거두어 들인다. 하지만, 소년은 이사를 통해서 결국은 소년회를 떠난다는 것으로 처리된다.

 

<광장>을 읽다보면 착각하는 것이 이명준은 굉장히 유능한 사람으로 좌우 모두에게 인정받아 자기들에게 서로 오라고 스카웃 제의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 충성도만을 중요시하는 양 체제에서 이명준과 같은 생활태도를 가진 인물이 그리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남한을 택했을 때는 모르겠지만 북한을 택했더라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북으로 송환된 포로들은 자본주의 세계를 수용소에서 나마 맛본 댓가였는지 대대적인 숙청과 집중지도의 대상이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북한 측의 감언이설과 달리 최인훈이 숨기고 있었던 사실은 어차피 송환되어도 이명준은 십중팔구 숙청되고나 어느 수용소행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이명준에게 지워진 운명이었으며, 그것은 이명준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태도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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