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가볍게 주인공이 "뒷방살이" 주인공으로 소외된 처지에서 타인의 세계를 흘끔흘끔 쳐다본다는 면에서 막연히 최인훈의 <광장>의 구도와 묘하게도 이원수의 1960년도에 나온 소설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원수의 다른 소설 비교적 초기작이었던 <오월의 노래>라는 소설에서 두 소설이 취하는 구도가 완전히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1960년 <민들레의 노래>의 뒷방살이 주인공
한국최고의 소설로까지 꼽히는 <광장>에서 월북한 아버지를 둔 이명준이 아버지 친구의 부잣집에서 '뒷방살이'를 하며 그들의 상류문화를 훔쳐보면서 은근히 나중에는 그 집 딸로 친구의 여동생이기도 한 영미를 겁탈할 생각까지 품는 장면이 있다. 같은 시기 나온 이원수 소설 <민들레의 노래>의 주인공도 정확하게 그러하다. 후자에서, '일가친척도 아니면서 아버지 어머니가 친아들처럼 키우는 현우'는 '정미 역시 친오빠나 동생처럼 생각해 온 현우'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자체에서 <광장>과 같은 구도를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왠지 이명준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어린이 주인공 현우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는 뭔가 공통성이 감지된다. 다만 이원수 소설의 남자어린이 주인공은 부모 특히 아버지가 부재한 환경에서 자라도록 설정된 것이 많다.
이원수의 해방직후 초기작 <오월의 노래>
그러면 <광장>의 판박이 구도인 <오월의 노래>는 어떤 소설일까. 이 소설은 광장이 나오기 오래 전에 나온 소설로서는 이원수의 초기작이니 만큼 비슷비슷한 그의 소설의 원형격으로 보인다. 6.25발발직전 1950년에 연재되다 완성은 1953년으로 미루어진 모양이다. 주인공은 역시 먹고살기 바쁜 목수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을 유랑하는 신세로 설상가상 누이까지 돈벌러 떠나면서 혼자 남겨지다가 이사간 마을 학교의 '소년회'에 가입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오월의 노래>의 좌익소설적 면모
여러가지로 보면 <오월의 노래>에서 5월은 곧 메이데이를 말하는 것 같다. 여기서는 "노동자"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서 아동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한 장면을 이원수는 어렴풋하게 보여주는데 이 노동자가 실컷 얻어맞고 순사에게 넘겨져 끌려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동소설이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거의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일본 사람 화단에서 꽃을 꺾다가 도둑으로 몰려 새총 혹은 공기총을 맞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도 보통은 무심히 지나칠 수 있지만 노동운동이나 좌익정치운동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발포사건을 묘하게 상징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만세운동이나 독립운동에서도 벌어지기도 해서 반드시 좌익적이라 할 수는 없으나 앞에서 노동자가 매맞는 장면을 보여준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어린이들 세계를 의식 확연히 드러내지는 않지만 좌익적인 코드들을 꼼꼼히 숨겨노았다고 할 수가 있다.
왜 <광장>과 <오월의 노래>는 비슷한 구도인가
<오월의 노래>에서 외톨이 소년은 잠시 학교의 소년회에 가입해 동료 소년들의 환대 속에 외로움을 달랜다. 물론 일제 당시에는 조직규율이 강한 좌익계 소년회도 있었고 여러 맥락을 보면 이 여기 나온 소년회 모델은 좌익계라고 보여진다. "위원장"이란 단어 등을 보면 이것도 좌익계 용어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사실은 좌익계건 우익계건 그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더 중요한 것은 좌건 우건 어떤 집단에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경계적인 인물이 잠시 그가 동조하여 속했던 사회로 부터 추방당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광장>이 취하고 있는 구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압권은 어리숙한 외톨이 소년 앞에서 소년회의 핵심성원인 것으로 보이는 한 동료 어린이가 던진 다음과 같은 질책이다.
"너 어린 게 우리 소년회의 비밀을 학교에 알리고...... 그래선 못써."
말하자면 이 장면만 놓고 보자면 주인공은 소년회에서 베테랑 고참 회원에게 질책 받고 (배신자로 몰려) 회에서 추방당하기 일보직전인 것이다. 그러나, 순진한 소년은 왜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도 변명하지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다.
나는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결말이 바로 이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명준이 남에서는 빨갱이라 형사들에게 욕먹고 북에서는 간부들에게 비웃음 반의 추궁을 당하는 장면과도 같다. 이명준은 광장이니 뭐니 거창하게 떠들지만 그러한 상황을 못견뎌서 결국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원수는 여기서 아마 소년소설인 점을 의식해서 원만한 타협으로 끝을 맺게 한다. 오해가 풀려서 선생님의 지시로 질책을 거두어 들인다. 하지만, 소년은 이사를 통해서 결국은 소년회를 떠난다는 것으로 처리된다.
<광장>을 읽다보면 착각하는 것이 이명준은 굉장히 유능한 사람으로 좌우 모두에게 인정받아 자기들에게 서로 오라고 스카웃 제의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 충성도만을 중요시하는 양 체제에서 이명준과 같은 생활태도를 가진 인물이 그리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남한을 택했을 때는 모르겠지만 북한을 택했더라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북으로 송환된 포로들은 자본주의 세계를 수용소에서 나마 맛본 댓가였는지 대대적인 숙청과 집중지도의 대상이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북한 측의 감언이설과 달리 최인훈이 숨기고 있었던 사실은 어차피 송환되어도 이명준은 십중팔구 숙청되고나 어느 수용소행이 결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이명준에게 지워진 운명이었으며, 그것은 이명준의 사고방식이나 생활태도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