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읽을 때 충격먹었던 것이 <잔디 숲속에 이쁜이>.

 

이름 부터가 심상치 않지. "잔디"를 빼고 성인 소설로 제목을 바꾸면

 

숲속에 미녀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여거 읽다 보면 "아편장이' 이야기도 나온다.

 

 

아들 읽는 동화에 말하자면

 

마약섹스

 

그 배경에 깔고 있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는 것. 얘들 사랑 어설픈 결혼이야기 소꿉놀이 이야기이기도하고 말하자면 전제주의 국가 북한 같은 나라의 혹정 하에 사는 평민의 삶과 사랑 이야기인데 다시 그 점을 의식하고 읽으면 그들의 고통과 한숨에서 요상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막장드라마에 볼 삼각관계 이야기까지 무슨 놈의 어린이 사랑 치고는 영 글러 보였다. 당시 읽을 때조차 내가 부모라면 이런 이야기 알고도 읽히진 않을 거라고 생각이 희미하게나 들었다. 과연 사랑이 이런 건가 혹은 이렇게 힘들게 사랑할 필요가 있나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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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연구서도 나오고 이원수에 대해 비판적인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원수에 대해 안좋게 이야기 하는 점 중에 '나르시즘'의 작가라고 하는 것도 같더군.

 

그의 동화 <불새의 춤>이라는 게 있는데 전태일의 사건을 소재로 한 동화란다.

 

전태일이 잘했건 못했건, 아이들 읽히는 데 까지 자살한 혹은 분신자살한 이의 이야기를 한 것은 좀 그렇다. 왜정 때에도 '총후'를 뒷받침하던 이원수 문학은 결국 자살특공대를 어린이들부터 준비시키는 것임을 그의 시 <오키나와의 어린이들>에서 충분히 자각한 인물이면서

 

해방 후 25년 만에 다시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아이들을 또 자살특공대로 내몰려는 냉혹한 심사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지는 겨우 친일이나 한 주제에 '애국'이든 '노동해방'의 고상한 이상 때문이든 누구더러 자살특공대로 나서란 말인가?

 

물론 전태일이 잘했고 못했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글을 읽는 10세 소년들에게 까지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이런 몰염치해 보이는 행각을 볼 때 그의 좌익연루되었던 시기들을 볼 때 나는 심지어

 

이원수 이 인간이 잠복했던 빨갱이나 동조자의 성향이 있느냐를 넘어 아예 비전향한 채로 잠복한 '간첩'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 까지 하다. <불새의 춤>이 발표되었던 시기도 숙고 끝에 발표한 것이 아니라 사건이 있은 거의 동시에 나온 것을 보면 그가 적어도 소위 '진보'에 대해 상당한 심정적 동조자였음은 분명한 것 같다. 간첩이니 좌익성향까지는 또다른 이야기지만. 하지만 일제말 그의 '총후'행각을 제대로 반성한 다면 이런 행동은 좀 자제되고 숙고했어야 했다. 간첩이니 좌익동조자인지를 떠나 얘들 상대로 이런 이야기나 풀다니 사람이 도무지 양심이 없는 것 같다.

 

간첩이란 증거가 있냐면 물론 없지만, 한가지 주변에 연결점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사실상 지배그룹에 침투한 거물간첩으로도 볼 수 있는 자유당의 양우정이가 이원수랑 한동네 동지였다는 것을 최근 읽어 알게 되었는데 기절할 것 같다. 누가 아나. 친구처럼 그 역시 거물 (문학가) 간첩이었을지.

 

제기랄. 분신 사건 터진지 채 1년도 안된 때 아이들 상대로 그런 글 쓴 것도 그렇고, 주변에 전향한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거물간첩이었던 양우정을 친구로 둔 것 까지. 참  

 

 

 

주변 동지 중에 간첩이 있다고 그도 간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조심해서 봐야 할 인물인듯 싶다. 초록은 동색이고 까마귀 노는 중에 가는 백로를 경계하는 말이 있듯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직간접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는 것이 세상의 흔한 경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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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 이야기니 이 디렉토리에 글을 남겨보자. 어느 우국지사가 독립운동차 불란서 지배하의 월남에서의 소회를 이렇게 풀어썼다.

 

그때 월날 사람들은 일체의 운명을 불란서 사람에게 맡기고 체념한 상태에서 될대로 되라는 이런 소극적인 태도였다. 마치 우리나라가 왜놈의 통치 밑에서 유행가의 음율이 오직 애수와 고민을 표현한 멜로디와 마찬가지로 월남에서도 저녁이 되면 거리 모퉁이의 야자수 밑에 모여 차를 마시며 단조로운 악기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의 뜻을 알지 못하나 노래의 멜로디는 슬픔과 불란서의 잔악한 통치에 부딪히는 괴로움과 슬픈 환경을 애수하는 것임을 우리는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이별타령은 1980년대 중후반의 발라드열풍이 유독 심했지. 그것말고도 운동권선배 행세할 때 유행어 처럼 써먹는 게 무슨 무슨 '고민'해봐라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뭐 고민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는데 항차 나라위한 우국충정에서도 아니고 그까짓 여자(남자) 하나 때문에 고민씩이나 하고 나르시즘에 폭 빠지지 않으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은 가사는 너무 웃긴다. 이영훈 같은 작곡가가 그런 거 보면 참 천재는 천잰데, 뭔가 그 당시 상황이나 한국의 잘못된 문화풍토에 '영합'한 원죄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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